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입사한 지 3년 조금 넘었다. 영상 제작을 전공하고 중소 영화 스튜디오에서 몇 달간 인턴으로 일하다가 처음부터 하나씩 제대로 배워 보자는 생각에 이곳에 들어왔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DVD를 사 오셨다. 지금은 컬렉션이 책장 하나를 차지할 정도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참 많이 보면서 자랐다.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고 동경하는 마음은 커서도 여전해서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다. 여기 들어올 때도 연출 감독을 지원했다. 그런데 제작 실무 전반을 경험하고 익히면 연출할 때 도움이 될 테니 제작 PD를 먼저 해 보라고 권하더라. 사실 큰 조직에서 일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고, 제작 관리를 먼저 해 본 다음 나중에 연출 PD를 해도 괜찮겠다 싶어 제작 PD를 맡았다. 처음에는 잘 모르는 일이라 낯설었는데 이제는 적응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슈퍼윙스와 엄마 까투리 제작에 번갈아 참여하고 있다. 슈퍼윙스는 제작 PD를, 엄마 까투리는 시즌7부터 연출 PD를 맡았다. 지금은 엄마 까투리 시즌8 제작 돌입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슈퍼윙스 시즌10 제작을 관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으라면 슈퍼윙스 시즌7이다. 이곳에 들어와 맡은 첫 작품이다. 그때 일을 가르쳐 준 직속 선배로부터 참 많은 걸 배웠다. 좌충우돌하면서 하나씩 배우고 깨달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 잘하고 있는 게 그때 잘 배워 둔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알아서 잘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좀 으쓱해진다. 제작 PD라면 챙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제작 과정과 흐름을 보고 지금 신경써야 할 게 뭔지, 타이밍에 맞춰 체크해 놔야 할 게 뭔지, 이런 걸 미리 잘 해놔서 계획한 대로 일이 잘 굴러갈 때 ‘일잘러’가 된 것 같다. 보통 자신이 만든 작품을 방송할 때 희열을 느낀다고 하는데 난 그게 없다. 작품 하나를 끝내면 곧바로 다음 시즌 제작에 들어가야 해서 별 감흥이 없다.(웃음) 힘들 때라면 제작 전반을 관리하는 소통 창구다보니 내 잘못도 아닌데 중간자 입장에서 욕을 먹거나 사과하고 읍소해야 하는 순간들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애니메이션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일은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걸 보면서 만든다는 게 힘이 된다. 엑셀 프로그램을 다룰 땐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애정이 가는 캐릭터를 보면서 일하는 환경은 즐겁다. 슈퍼윙스 시즌7부터 나오는 골든보이 펫이란 캐릭터가 있는데 악동 같은 골든보이의 대사를 따라 하면서 성격이 나쁜 척하는 모습이 귀엽다.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는가?
‘니모를 찾아서’를 아주 감명 깊게 봤다. 물속의 아름다운 광경은 지금 봐도 너무 좋다. 과잉보호하다 관계가 틀어진 장애 아들을 다시 찾아가는 아빠의 부성애와 잘못된 생각을 깨달아 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부모에게 교훈을 주는 스토리인데 가족이 다 같이 봐도 재밌는 대표적인 가족 영화다. 디즈니, 픽사의 이런 작품처럼 어른이 봐도 감동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장르는 상관없다. SF, 코믹, 호러, 드라마 뭐든 좋다. 이야기에 맞는 장르를 선택하면 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