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요즘 캐릭터 작업 현장의 풍경은 이렇다. 기획자는 대규모 언어모델로 세계관 연표와 성격 설정, 말투 규칙을 초안까지 뽑아 놓고, 디자이너는 이미지 생성 도구로 콘셉트 시안 수십 장과 컬러 팔레트 후보를 하루 만에 비교한다. 3D팀은 그 원화를 모델링과 리깅으로 넘기고, 같은 캐릭터가 100장의 그림에서 같은 인물로 보이게 하려고 자사 이미지를 학습시킨 전용 모델까지 따로 만든다.
속도와 비용의 개선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렇게 완성한 캐릭터를 회사가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가 불투명해졌다는 점이다. 게임은 완성된 빌드 자체가 상품이지만 캐릭터는 다르다. 하나의 도안이 인형과 문구, 식품 패키지, 광고, 챗봇, 콜라보레이션 상품으로 20년, 30년 반복해서 재사용하는 원본이기 때문이다.
더 까다로운 건 이 문제가 지금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작 단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라이선싱 규모가 커져 상대방이 권리 실사를 요구할 때, 또는 투자와 매각 실사 단계에서 권리의 근거를 제시해야 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시점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생성형 AI가 개입한 캐릭터의 저작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기록을 어디까지 남겨야 하는지, 저작권이 얇아진 자리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지, 그리고 캐릭터가 말하기 시작하면서 새로 생긴 쟁점과 외주 계약의 공백을 차례로 살펴본다.
생성형 AI로 만든 캐릭터의 저작자
기준은 AI를 썼느냐가 아니라 사람과 AI 중 누가 창작적 표현을 주도했느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작년 6월 30일 발간한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인정되면 GAI 활용 저작물로 등록이 가능하고, 인정되지 않으면 GAI 산출물이어서 등록할 수 없다는 기준을 공식화했다.
'어느 정도'에 대한 정량 기준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 다만 참고할 만한 대비는 있다. 미국 저작권청은 2023년 2월 미드저니로 만든 그래픽 노블 사건에서 작가가 쓴 텍스트와 이미지 · 텍스트의 배치 조합만 인정하고 AI가 출력한 캐릭터 이미지 자체의 저작권은 취소했다. 같은 해 9월에는 프롬프트를 624회 넘게 수정한 작품이 초기 출력물이 최종본에 실질적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이유로 거절됐다. 반면 작년 1월 등록에 성공한 작품은 생성 이후 인페인팅으로 서른다섯 번에 걸쳐 부분을 반복 수정한 기록을 제출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프롬프트를 몇 번 고쳤는지는 인정 요소가 아니며, 출력이 나온 다음에 사람이 손을 댄 정도가 관건이다.
캐릭터 분야에는 유리한 지점이 있다. 캐릭터 자산의 핵심은 일관성인데, 생성형 AI는 본질적으로 매번 다른 그림을 내놓는다. 그 간극을 메우려고 아티스트가 표정과 의상, 비율과 디테일을 맞추고 레이어를 분리하는 작업이 바로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입증하는 지점이 된다. AI가 잘 못하는 일을 사람이 하고 있는 셈이다.
등록 실무에서는 숨기는 쪽이 훨씬 위험하다. AI가 만든 것을 사람이 창작한 것처럼 신청하면 허위 등록이 되어 등록이 무효화되거나 형사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신청서의 창작적 기여 사항란에 AI 활용 사실을 명시하고 사람이 창작적으로 표현한 부분에 한정해 주장하는 것이 정석이다. 대신 등록은 하나로 뭉치지 말고 나누어 설계해야 한다. 세계관과 설정집은 어문저작물로, 캐릭터 도안은 미술저작물로, 여러 시안과 변주본을 모은 캐릭터 시트는 편집저작물로 나누어 검토한다. 안내서는 GAI 산출물 자체는 등록할 수 없어도 그 산출물을 선택하고 배열하고 구성한 데 창작적 기여가 있으면 편집저작물로 등록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 실무상 기억해 둘 만한 우회로가 된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이 있다. 업무상저작물은 결과물이 저작물일 것을 전제로 한다. AI는 직원이 아니라 도구이므로, AI가 창작을 주도한 결과물은 애초에 저작물이 아니어서 업무상저작물도 될 수 없다. 직원이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회사의 권리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AI 활용 기록의 중요성
완성한 그림만 놓고 보면 사람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아무도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기록이 곧 권리가 된다. 남겨야 할 것은 여섯 가지다. 프롬프트 이력과 모델명 · 버전 · 시드값, 수정하기 전의 생성 원본 파일, 수정 단계별 스냅샷과 레이어 파일, 최종본과 작성 경위서, 역이미지 검색 등 유사도 검증 결과, 그리고 사용한 도구의 약관과 라이선스 조건 캡처다.
가장 자주 누락되는 것이 두 번째다. 마음에 들지 않는 출력이라 덮어써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인간의 기여를 입증하는 방식은 전후 대비이므로 원본이 없으면 무엇을 손봤는지 증명할 수 없다. 레이어 파일도 마찬가지다. 레이어가 살아 있으면 어느 부분이 사람의 손인지 그 자체로 드러나지만, 병합 파일만 남기면 이전 정보는 소멸한다. 마지막 항목도 가볍게 볼 게 아니다. 도구마다 상업적 이용 조건과 출력물의 권리 귀속 조항이 다르고, 약관은 수시로 바뀌는 데다 소급 확인이 되지 않는다.
관리 원칙은 세 가지다. 작업이 끝난 뒤가 아니라 진행 중에 남길 것, 캐릭터 단위가 아니라 시트 단위로 묶어 권리 설계의 단위와 기록의 단위를 일치시킬 것, 외주 계약서에 동일한 항목을 제출 의무로 명시할 것이다.
덧붙여 기획 단계에서 실제로 가장 위험한 건 저작권이 아니라 영업비밀이다. 미공개 세계관 설정집이나 캐릭터 기획안, 콜라보레이션 협상 내용을 외부 AI에 그대로 붙여 넣는 순간 비밀로 관리되고 있다는 요건이 흔들릴 수 있다. 승인 도구 목록과 외부 AI 입력 금지 정보의 범위를 사내 규정으로 먼저 정해 두어야 한다.
저작권 외 보호 수단-상표권 · 디자인권 · 부정경쟁방지법
AI 활용 비중이 높은 캐릭터일수록 저작권은 얇아진다. 그러나 캐릭터는 저작권 하나로만 보호되지 않는다. 상표권, 디자인권, 부정경쟁방지법까지 네 겹으로 보호된다. 생성형 AI가 흔드는 것은 그중 저작권 하나뿐이다. 가장 넓은 그물이 헐거워지면 나머지 세 개로 무게중심을 옮기면 된다.
상표는 표장의 형태 요건만 갖추면 AI가 만들었든 사람이 만들었든 출원할 수 있다. 출원서에 AI 생성 여부를 적는 칸도 없다. 심사의 관건은 식별력이다. 다만 등록 전까지 보호 공백이 생긴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AI로 만든 도안은 저작권으로 막기 어려우므로 등록이 나오기 전에 제3자가 그대로 베끼면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AI 활용 비중이 높은 캐릭터일수록 상품 출시 일정을 역산해 출원을 앞당겨야 한다.
디자인권은 물품에 내재된 형상을 보호하므로 피규어와 문구, 패키지에 바로 대응한다. 다만 창작자는 자연인이어야 하므로 실제로 창작적 기여를 한 사람을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주지 · 저명한 캐릭터 표지의 혼동을 다루는 제2조 제1호 가목과 나목,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의 무단 사용을 다루는 파목이 마지막 방어선 역할을 한다.
화풍 문제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저작권법은 구체적인 표현만 보호하고 화풍이나 스타일, 기법 같은 추상적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다. 일본 문화청도 2024년 3월 'AI와 저작권에 관한 고찰'에서 작풍과 화풍은 아이디어이므로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을 정리했다. 다만 기존 캐릭터의 의상과 눈매, 고유 모티브와 소품을 그대로 재현했다면 침해이고, 광고에 공식 스타일 같은 문구를 붙여 소비자가 제휴 관계로 오인하게 만들면 화풍 모방 여부와 별개로 부정경쟁방지법과 표시광고법 문제가 된다.
실제 사고는 창작 단계보다 마케팅 단계에서 더 자주 난다. 물량이 많고 마감이 촉박해 검수가 허술해지기 때문이다. 배경에 들어간 타인의 사진, 실존 인물과 닮은 얼굴, 타사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전형적인 유형이다. AI는 학습한 유명 캐릭터의 의상과 무기, 눈매를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므로 배포 전 유사도 검증을 절차로 못 박아 두어야 한다. 올 1월 22일 시행된 AI 기본법이 생성형 AI 산출물에 대한 표시 의무를 도입한 만큼, 굿즈와 챗봇, 홍보물의 표시 방침도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AI 시대의 외주 계약
외주 산출물이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하면 대외적 책임은 발주사가 진다. 외주가 AI를 쓴 줄 몰랐다는 사정은 면책 사유가 되지 않고, 상대방이 그 캐릭터의 저작권을 등록해 두었다면 저작권법 제125조 제4항에 따라 침해에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상권은 사후 정산의 문제일 뿐이고, 그 사이 마케팅은 중단되며 이미 생산한 굿즈 재고는 폐기된다.
저작권 일체 양도 조항을 넣어 두었더라도 공백은 남는다. 양도는 존재하는 권리를 옮기는 것이지 없는 권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므로, 산출물에 처음부터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넘겨받을 객체 자체가 없다. 또한 저작권법 제45조 제2항에 따라 특약이 없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은 양도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캐릭터 사업은 본질적으로 파생물 사업이므로 이 조항을 빠뜨리면 정작 사업을 키우려는 시점에 발이 묶인다. 저작인격권은 일신전속이므로 불행사 특약으로 처리한다.
캐릭터 분야에서만 나오는 조항이 하나 더 있다. 일관성을 맞추려고 자사 화풍을 학습시킨 파인튜닝 모델과 가중치 파일이다. 귀속과 반환, 폐기를 정해 두지 않으면 그 모델이 경쟁사 작업에 재사용되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실제 계약서에는 거의 들어 있지 않은 항목이다. 다만 작업 기록과 소스 파일의 제출 요구는 하도급법상 기술자료 제공 요구로 평가될 여지가 있으므로 정당한 사유와 서면 교부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우월적 지위에서 책임을 전면 전가하는 특약은 부당 특약으로 무효가 될 수 있다.
맺음말
정리하면 이렇다. AI 활용 캐릭터의 저작물성은 AI를 썼는지가 아니라 사람이 창작적 표현을 주도했는지로 판단한다. 그 판단의 근거는 결국 과정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우리 캐릭터의 권리를 우리도 증명하지 못한다. 저작권이 얇아지는 만큼 상표권과 디자인권, 부정경쟁방지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등록 전 공백을 줄이기 위해 출원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 캐릭터가 말하기 시작한 이상 챗봇과 합성 음성은 별도의 계약과 절차로 다루어야 하며, 외주 계약서에는 저작물성 자체가 부정될 경우와 파생 모델의 귀속까지 미리 적어 두어야 한다.
캐릭터는 20년, 30년 쓰는 자산이다. 오늘 남기지 않은 기록과 오늘 빠뜨린 조항은 지금이 아니라 라이선싱이 커진 뒤에 문제가 되고, 그때는 되돌릴 수 없다.

최성우
· 특허법인 우인 대표 변리사
· 한국상표 · 디자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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