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한 죽음을 위로하는 삶의 순환 <물아기>_독립영화관 25_김상남 감독

캐릭터 / / 2020-01-28 11:49:33
Interview




김상남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이 오랜만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물아기’는 우연히 벌어진 아이의 죽음, 그리고 죽음을 계기로 생명이었던 존재가 하나의 물방 울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순환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에 대한 경계가 모호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조각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풀어낸 물아기는 보는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김상남 감독을 만나 물아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김상남이다. 물아기, 갯벌아 갯벌아, 달빛 프로젝트, 일곱살 등을 제작했고, 각종 홍보 영상 작업과 그림책 일러스트 작업도 하고 있다.
물아기는 어떤 작품인가? 물아기를 만든 계기는? 물아기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삶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여행을 떠나게 된 아이의 이야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새로운 생의 시작점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나의 생명이었던 존재가 세상으로 환원되는 ‘순환’에 대해 서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그 생각을 한 편의 애니메이 션으로 만들게 되기까지는 두 계기가 있었다. 어느 눈 내리던 날, 문득 ‘눈도 다 제자리를 찾아 내리는구나’라고 생각한 것과 오래전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한 방울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는 고전 속문장. 이 두 가지에 사로잡힌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에 담긴 뜻은?

물아기는 갓난아기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 ‘물래기’라는 단어에서 따온 제목이다. 물래기라는 말의 뜻을 가만히 가늠해보면 엄마의 자궁 속에 차 있던 물 (양수)이 떠오른다. 또 물방울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갓난아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들이 물방울 아기의 이야기와 맞닿는다고 느꼈다.
제주도와 인연이 깊은 듯하다. 제주도는 감독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가? 아무래도 제주도가 고향이다 보니, 집앞마당의 장독대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자랐다. 산 중턱을 거니는 말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시야가 맑았던 날들의 기억은 종종 내가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릴 때 출발점이 되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주도나 제주도에서 자랐던 나의 어린 시절로부터 벗어난,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주도는 내게 영감의 원천임과 동시에 벗어나야 하는 한계이 기도 하다.
 
<물아기>의 시작은 어린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그런데 죽음이 슬프게 다뤄지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다

물아기는 아이의 죽음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로 인한 슬픔을 표현해 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바다와 같은 것이 다.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는 바다를 어떤 사람은 무섭게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편안한 곳으로 그린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른 바다가 되듯, 나는 다른 죽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엄마는 아이가 떠났을 때 아주 많이 슬퍼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일상은 차츰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고, 문득문득 기억을 돌이켜볼 것이다. 그 기억조차 마냥 슬픈 것은 아닐 것이다. 물아기의 엄마는 자신의 손바닥에 닿는 눈을 보았을 때아이를 ‘느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엄마와 아이는 계속 연결되어 있고,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물아기>를 비롯해 감독님의 작품에서는 아이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나는 어린 나에 대한 연민을 조금 가지고 있는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경계가 모호한 아이였다.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뚜렷이 나누어져 있지 않고, 그래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경계가 모호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물아기의 시작 부분에서 혼자 잠들어 있던 아이가 마당으로 나가 토끼장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건져낸 장면이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물아기 작업을 끝내야만 어린 나에 대한 연민을 벗고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애니메이션은 장면들을 통해 많은 것을 의도하고 내포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품 속 장면들에 담기는 많은 순간들, 생각들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작업한다.
예를 들면 바람. 제주도는 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 나역시 많은 바람을 보며 자랐다. 어느 날 바람이 보리밭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바람줄기가 보리밭을 패고 길을 만들며 나아가다가 저편에 서 있는 나무를 사삭, 흔들고 사라졌다. 문득 바람에도 감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본 바람을 물아기의 바람에게 투영했다. 관객들 역시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와 비슷한 체험을 하고, 나아가 공감한다면 좋겠다. 


오랫동안 작업해왔는데 작업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궁금하다

첫 작품이었던 일곱살은 거의 손그림으로 완성했고 달빛 프로젝트는 컷아웃 애니메이션이었다. 갯벌아 갯벌아는 공동작업이다 보니 작업을 나눠서 했고, 그러다 보니 디지털 작업이 많았다. 물아기를 작업할 때는 한지에 손그림을 그렸는데, 그 과정이 무척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작화는 계속 수작업으로 해왔다. 왜냐하면 그게 재미있고 좋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꽤많은 노동과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으면 계속 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신티크 등을 활용해 작업 과정을 좀 더 디지털화하면 효율이 높아지겠지만, 그걸 위해 수작업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할지는 고민되는 부분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지?

첫 애니메이션이었던 일곱살이 나를 애니메이터의 길로 인도해 여기까지 왔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많이 그리고 오래 견디는 근성은 내게 있었나 보다. 그렇게 애니 메이션을 만들고 나니 작품을 상영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모아진 피드백을 보며 어서 다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하나를 끝내고 나면 다음 작업을 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돌이켜 보면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계기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해서였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 창작을 하는 일은 내가 살아 있음을 표현하는 삶의 축인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 작품은 아직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두 작품에서 배경으로 제주도가 등장했으니, 이제는 제주도나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만할 수 있는 이야기 중 나를 매우 강하게 잡아끄는 것이 여전히 있기도 하다. 어쨌든 다음 작품은 나를 작가로서 성장 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늘 내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들을 작업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작이 뭐냐고 묻는다면 물아기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면 물아기도 자연스레 떠나보낼 것 같다. 작업은 매번 처음 시작하는 일처럼 정말 어려워서 앞으로 내가 또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는 미지수지만, 늘 새로운 작품이 대표작이 되길 바라며 작업해나갈 것이다.


김상남 감독
·<일곱살> 2002
·<달빛 프로젝트> 2003
·<갯벌아 갯벌아> 2008
·<물아기> 2017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1월호
<남주영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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