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한 관찰과 타이밍 분배 잘해야 작품 완성도 높아_한국 만화영화 그리고 감독 _ 정창일 감독

캐릭터 / / 2020-04-13 15:49:30
Interview


 


“항상 느껴왔지만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의 애니메이션을 해왔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현장보다는 이론적으로나 학술적으로만 애니메이션을 이해한 외부의 시선들이 창작 애니메이터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평가하는 것이다. 어떠한 방식이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모든 현장인들이 존중받고 그 숭고한 노력들에 대한 가치가 높이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중학생 때 원로 만화가 오성 방기훈 선생의 문하생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 45년째 애니메이션 제작에 몰두 하고 있는 정창일 감독. 무대 위 스타보다는 완벽한 쇼를 만들기 위해 뒤에서 묵묵히 노력해 온 정 감독을 만나 그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근황이 궁금하다

투잡 뛴다.(웃음) 새벽 5시에 일어나 애니메이션 회사에 출근한다. OEM 연출감독으로 12시 즈음까지 일을 하고 경기도 고양시 풍동도서관에서 보안과 안내를 담당한다.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즐겁다. 회사에서는 어린이 코믹 애니메이션을 맡고 있는데 러닝타임 10분짜리 54편이다. 올해 3년째로 꾸준히 일감이 들어온다.


 


애니메이션 입문 계기는?

어렸을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그림을 잘 그리는 애가 있었는데 옆에서 그림도 좀 배우고 같이 놀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방기훈 선생이 작업실로 쓰던 여관에 드나들던 중 그림에 매료돼서 방 선생님 밑에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0대 초반까지 만화에 매달렸는데 1975년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당시에는 미디어가 만화밖에 없었는데 TV가 등장하면서 만화산업이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책으로만 만화를 보다가 그림이 어떻게 움직여서 영상이 되는지 너무 궁금해하던 때 마침 만화영화 제작 참여를 제안받게 됐다. 그래서 친구 따라 국립영화 제작소에서 아웃소싱으로 작업하는 촬영소에 가 봤는데 대포처럼 생긴 거대한 애니메이션 카메라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됐다. 지금으로 따지면 트럭 샷(Truck shot: 움직이는 운반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 촬영하는 기법)을 위한 설비인데 거기에 반해서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CF 계통에서 일했다. 조그마한 아웃소싱 업체에서 일하다 보니 콘티에서 화면 제작까지 전 장르를 담당해야만 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사람이 있다면?

베이비휴이, 요괴인간 벰베라 등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작품보다 당시 열악 했던 제작 환경이 더욱 생각난다. 일례로 당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대한뉴스가 있었는데 정부사업의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셀로판지가 없어서 유리판에 돈 쌓아놓은 그림을 포스터 칼라로 그린 뒤에 면도칼로 돈 그림을 한 컷씩 잘라 촬영해 거꾸로 돌려보기도 하며 전부 수작업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크로마 컬러나 아크릴 물감은 전부 수입해야 했는데 규제가 심해서 어쩔 수 없이 포스터 칼라를 달걀흰자와 섞어 그림을 그린 뒤촬영실로 갖고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열악했 다.(웃음) 기억에 남는 친구를 꼽으라면 지쎄라는 프랑스인 친구가 있는데 OEM 작업을 하면서 원청 감독자와 하청 실무자 관계로 만났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매우 합리적이고 애니메이션에 대해 고민하며 연구하는 친구였다.

실력이 좋다. 그의 아이디어는 고정관념을 깨거나 재치가 넘쳤다. 지금도 교류하고 있는데 저번에는 사무실에 쪽지를 놓고 갔더라. 예전에 같이 손발을 맞췄던 애니메이션의 그림을 그려놓고 ‘왔다 갑니다’라고 써놨더라. 참 괜찮은 친구다.






요즘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보는가?

너무 잘한다. 실력이 뛰어나다. 라바를 보라.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가 넘쳐나지않나. 우리 세대가 일했던 초창기 애니메이션과 근래 애니메이션은 아주 많이 다르다. 감동도 많이 주고 사실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강하다. 자기들만의 노하우들이 있겠지만 요즘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을 보면 간단하고 내용만 빠르게 전달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래도 구성이나 전개방식등 기본적인 원칙과 기초를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밀한 관찰과 타이밍 분배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온다. 또 하나 양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나 OEM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퀄리티가 높은 작품들을 많이 제작해 국산 애니메이션의 힘을 보여줬으면 한다. 후배들이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어 자랑스럽다.


 

올해 계획이 있다면?

45년 동안 현직에 있는데 OEM 방식으로 일을 하면서 항상 머릿속에 맴돈 건 내 작품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아직도 능력이 부족하지만 올해에는 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일주일에 작품 2개씩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연말쯤이면 시리즈 1개 정도의 스토리보드가 나올 것 같다. 노인들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건데 타이틀은 ‘영춘 별곡’으로 정했다. 영원한 청춘이란 뜻이다. 타깃층은 어린이와 노인층인데, 손주가 할아버지를 골탕먹이고 어른들이 손주를 약올리는 그런 에피소드 들이다. 그러면서 가슴 따뜻한 얘기도 있고 황혼의 사랑 얘기도 있다. 남의 일만 했으니 내 작품을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해보는 거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4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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