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응환 감독은 1968년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이후 펜을 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다양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만화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미술과 배경을 그려온 오응환 감독을 만났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공식화해 미술, 배경에 녹여
오응환 감독은 세기상사를 시작으로 세경흥업, 서울동화, 황금동화, 미로동화를 거쳐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배경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자그마치 50년, 반세기의 시간을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것이다. 50년의 세월 중 30년은 애니메이션 배트맨의 배경을 그리는 데 사용했다. 국내 만화영화부터 국내외 외주제작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미술과 배경만을 그려온 원로감독이다.
“젊은 시절 만화 분야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오래 했네요. 제가 걸어온 만화영화, 애니메이션의 길은 부단한 연구의 시간이었어요. 상상과 상식 이상의 그림을 그려내는 어려움이 늘 있었죠. 시나리오에 ‘케냐의 오지에 이름 없는 병원’이라고 적힌 한 줄을 그림으로 만들어내야 했기에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관찰하고 공식화해야 했어요.”


로보트태권V서 독창적인 배경 설정 마루치 아라치에서 미술감독 직책 첫 사용
오응환 감독은 국내 만화영화에서 첫 체계화와 분업화를 진행한 미술감독이다. 국내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만화영화의 미술과 배경 부분 공식화와 미술감독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고 분업화를 시도해왔다.
“김청기 감독님과 로보트태권V를 제작할 때 독창적으로 배경을 설정했어요. 그렇게 첫 분업화가 이뤄졌어요. 그리고 다음 작품인 마루치 아라치에서 미술감독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죠. 당시 미술감독은 시나리오에서 그려지는 모든 공간, 소품 등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기존에는 캐릭터의 연기 위주로 배경을 그렸다면, 육각면체 공간에 캐릭터가 들어와 연기를 한다는 가정하에 면면의 그림(배경) 장치를 만드는 거예요. 캐릭터가 표정 연기를 할 때 클로즈업이 되면 배경에서 함께 클로즈업되는 소품과 부각되는 배경 등을 그려내는 작업을 하는 거죠. 시나리오에 맞게끔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기틀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국내 첫 배경만 전문으로 하는 외주제작사 설립
오응환 감독이 분업화와 체계화를 구축한 데에는 세기상사와 세경흥업, 서울동화를 거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외주 제작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다. 이미 당시 일본은 만화영화의 배경을 작업하기 위한 공식이 존재했다고 한다. 야구장 피처스 마운드 하나를 그리더라도 각도 등 정묘한 공식이 있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은 오응환 감독이 국내 만화영화 실정에 맞게 체계를 잡고 분업화를 이뤄낸 것이다. 국내외 감독과 외주제작사들은 오응환 감독의 이러한 면면과 작업 결과물을 토대로 미술 부문만을 맡기기 시작했다.
“이 자리를 계속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즐겁게 작업했기 때문이에요. 지루했던 적이 없어요. 길을 가다 횡단보도에 서면, ‘지진이 발생했을 때 장면을 그리게 된다면, 저 건물이 어느 각도로 무너질지, 일기예보, 계절에 따라 하늘의 색감, 공기까지 표현하고 싶어했어요. 언젠가부터 미국 제작자들이 나를 아트디렉터로 인정 해주면서 미술, 배경만 일을 수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왔고, 크로바아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배경만 그리는 일을 해왔죠.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 30년째 TV시리즈 배트맨의 외주 제작에 참여하고 있어요. 배트맨과 슈퍼맨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국산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세대를 넘는, 잊혀지지 않는 캐릭터 만들어지길”
오응환 감독은 국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후배들에게 “관객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관객이 바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 주연이 아닌 조연, 악역 캐릭터도 인지도를 쌓을 수 있도록 창작하고 그런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외국은 캐릭터 작가, 감독, 연출, 조감독 모두가 프리프로덕션에 집요할 정도로 참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메인프로덕션에 집중하지만 집중과 투자는 프리프로덕션에 더 많이 해야 하죠.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애니메이션, 국내에서도 반드시 만들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현직에서 일하는 재능 있는 후배들의 열정이 있기에, 저도 지금의 자리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응원하고 아트디렉터로서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19.11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