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온라인 마켓에서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제품을 갖고 있지 않고 배송도 직접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판매자는 상품 판매 페이지만을 여러 개 관리하면서 주문이 들어오면 그제야 해당 제품을 찾아 배송하거나 생산자나 유통사가 구매자에게 그 제품을 직접 배송하도록 한다. 어떤 판매자는 시장에서 반응이 좋은 제품 또는 정품을 싸게 산 뒤 적정 이윤을 붙여 온라인 마켓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용량이 큰 제품을 소분해 팔기도 한다. 이러면 제품을 직접 개발·생산하는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이러한 판매 행위를 제지하고 싶을 것이다.
위조 상품이 아닌 정품을 사들여 재판매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을까?
소분 판매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는가?
법원은 “상표권자 내지 정당한 사용권자(이하 상표권자 등이라고 한다)에 의해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양수 또는 수입한 자가 임의로 그 상품을 소량으로 나눠 새로운 용기에 담는 방식으로 포장한 후 그 등록상표를 표시하거나 위와 같이 등록상표를 표시한 것을 양도했다면, 비록 그 내용물이 상표권자 등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상품의 출처표시 기능이나 품질보증 기능을 해칠 염려가 있으므로 이러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표권 내지 전용사용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1도17524 판결)
따라서 사들인 정품을 소분해 다시 판다면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므로 본사에서 해당 상품들에 대한 판매금지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정품을 사들여 온라인 마켓에서 재판매하는 것도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일까? 아니면 저작권 또는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하는 건 아닐까?
리셀러의 정품 재판매가 상표권을 침해하는가?
가. 상표권 소진 이론
우선 상표권 소진에 대해 알아보자. 대법원은 “상표권자 또는 그의 동의를 얻은 자가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양도한 경우 해당 상품에 대한 상표권은 그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서 소진되고, 그로써 상표권의 효력은 해당 상품을 사용, 양도 또는 대여한 행위 등에는 미치지 않는다. 한편 지정상품, 존속기간, 지역 등 통상사용권의 범위는 통상사용권계약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므로 이를 넘는 통상사용권자의 상표 사용행위는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통상사용권자가 계약상 부수적인 조건을 위반해 상품을 양도한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양도행위로서 권리소진의 원칙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고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 상표의 주된 기능인 상표의 상품출처표시 및 품질보증 기능의 훼손 여부, 상표권자가 상품 판매로 보상을 받았음에도 추가적인 유통을 금지할 이익과 상품을 구입한 수요자 보호의 필요성 등을 종합해 상표권의 소진 여부 및 상표권이 침해됐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2020. 1. 30. 선고 2018도14446 판결)
즉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판매한 경우 해당 상표권은 그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서 소진돼 상표권의 효력은 해당 상품을 재판매하는 행위에 미치지 않는다. 다만 본사가 상품을 유통사에 공급하면서 판매장소와 판매방법 등을 한정해 공급했다면 그 판매장소와 판매방법을 위반해 판매하는 경우 상표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본사가 유통사에 제품을 직접 공급하지 않고 구매자가 본사 제품을 온라인 마켓이나 다른 유통사에서 사들여 온라인 마켓에서 재판매하는 경우 본사는 해당 상품의 재판매를 막을 수 있을까?
위에서 살펴본 상표권 소진이론에 따르면 본사는 이미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판매해 상표권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구매자가 해당 상품을 구매한 후 온라인 마켓에서 재판매한다면 판매방식 등에 대한 제약사항에 대해 별도의 계약이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에 본사는 상표권에 기반해 이러한 재판매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나. 중국의 사례
이와 관련해 IP Insight에 실린 ‘중급인민법원, 권리소진으로 아벤느 상표에 대한 침해를 인정하지 않고 다만 홈페이지에 아벤느를 포함해 표기한 것에 부정경쟁행위 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고 피에르파브르사는 1961년 설립된 프랑스 기업으로 1994년, 2000년, 2003년에 걸쳐 제3류 화장품·세면용품 등의 뷰티제품을 지정상품으로 하는 AVENE EAU THERMALE 상표를 중국 상표국에 등록했다.
이후 원고의 상품은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를 형성했고 원고는 브랜드 차별화를 위해 전매점을 통해 서만 상품을 판매했다. 2014년 6월 원고는 피고 후이지사가 ‘(아벤느 중국 공식홈페이지)-Avnen 민감성 피부케어 전문’이라고 표기한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등록상표와 동일한 상표가 부착된 상품을 판매하는 걸 발견했다.
원고는 피고의 홈페이지에서 상품을 구입한 과정과 해당 홈페이지 내용에 대해 공증을 거친 후 피고가 웹사이트에서 원고의 등록상표를 무단 사용하고 ‘중국 아벤느 공식홈페이지’라고 표기한 점에 대해 창사시중급인민법원에 상표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를 이유로 소송를 제기했다.
법원은 피고가 온라인에서 아벤느 정품을 판매했고 상품의 합법적 출처가 인정되므로 피고가 웹사이트에 등록상표를 사용한 행위는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가 웹사이트에 아벤느 공식홈페이지라는 걸 강조한 점, 원고 홈페이지에 있는 일부 사진과 문구를 무단으로 사용한 점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중급인민법원은 피고에게 손해배상액 4만 위안과 함께 부정경쟁행위 금지를 선고했다.
중급인민법원은 피고가 웹사이트에서 등록상표가 부착된 상품을 판매하고, 해당 사이트에 상표를 사용한 행위가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피고가 온라인으로 판매한 아벤느 상품은 타오바오에서 적법한 과정으로 매입한 정품이고, 피고가 웹사이트에 원고의 등록상표를 사용한 건 객관적으로 상품의 출처를 밝히는 작용을 해 상표의 기능을 저해하지 않고, 피고가 합법적 출처를 통해 매입한 상품을 변형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하는 것은 이미 상표에 대한 권리가 소진됐으므로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피고가 웹사이트에 등록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한 점은 원고에 대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피고가 웹사이트에 두드러지게 원고의 상표를 사용하면서 해당 홈페이지를 아벤느 중국 공식홈페이지, 아벤느 중국쇼핑몰(商城), 아벤느 중문 공식홈페이지라고 홍보했고, 설령 피고가 판매한 아벤느 상품이 정품이라 할지라도 판촉을 위해 사용되는 해당 상품의 상표·사진·문자 등은 합리적이고 적당한 수준에서 활용돼야 하는데 피고는 무단으로 원고의 공식홈페이지에 있는 사진과 소개문구 일부를 도용했으며, 피고의 이러한 등록상표 사용은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피고의 온라인 판매가 원고와 사업적으로 연관이 있거나 원고와 피고가 사용허가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오인·혼동할 수 있으므로 신의성실원칙에 위배됨과 동시에 일반적인 상도덕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품을 사들여 판매하는 경우 상표권이 소진됨에 따라 이를 상표권에 기반해 제지하기는 어렵다. 다만, 제품의 사진 등을 무단 사용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종면
·특허법인 아이엠 파트너 변리사
·주식회사 위고페어 대표(AI 기반 온라인 위조상품 모니터링 플랫폼 WEGOFAIR 운영사)
·이메일: kjm4good@gmail.com
아이러브캐릭터 / 김종면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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