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의 영화편지]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허들'

칼럼 / 안재훈 기자 / 2025-12-02 11:00:06
Review

 

남의 불행을 통해 내 삶의 동기를 찾거나, ‘난 그나마 다행’이라며 위안 삼는 일을 경계한다. 누군가와 비교해 칭찬받는 것이 불편하듯 누군가와 비교해 행복을 확인하는 방식 역시 좋지 않다. 그래서 주인공 서연의 불행과 사회 구조의 문제를 보면서도‘이 정도면 난 괜찮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삶 속에 갇혀 있는 서연의 현실은 하느님이 사람에게 견딜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 말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운동경기의 허들은 입술 한 번 깨물고 나면 넘을 수 있지만, 삶의 허들은 넘는 순간 또 다른 허들이 들이닥친다.


그 허들을 만드는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허들을 보아야 한다.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어른이 내뱉는 말이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파괴하며, 그 말의 파동이 약자에게 어떤 파도를 일으키는지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영화는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행복을 향해 조금 더 가보라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함께 걸어가 보자고 이야기한다.

 

 

주인공 서연은 평범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고자 애쓰는 고등학교 허들 선수다. 실업팀 입단을 꿈꾸며 자신의 평범을 유지하고 싶었던 서연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가장이자 간병인이자 고등학생이자 피해자가 되고, 선한 마음 때문에 약자로 머물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 속에 놓인다.


정신을 차린 아버지의 회복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서연은 가족의 유일한 보호자로서 책임을 떠안게 되고 많은 결정을 해야 하며 낯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가고 현실과 가족의 무게 사이에서 겨우 버티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사람이 나약해질 때, 모든 문제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나약함을 이용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사람들, 그리고 나쁜 상황 속에서 서로를 밀어내며 이어지는 나쁜 경쟁이 생겨난다.

 


서연의 친구 민정 또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서연과는 또 다른 허들을 매일 넘고 있는 인물이다. 위태로운 삶이라는 경기는,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되레 보호자가 되어버리는 환경 속에서 더 큰 절망을 만든다.


서연과 아버지는 서로의 삶이 버텨 주기를 바라며 응원하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바꿔 입을 옷이 없는 것처럼 지금의 삶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연이 어른들에게 하는 깍듯한 인사다. 그 태도가 너무도 예의 바른 아이여서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도와야 한다. 사회와 어른은 상처투성이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듣는 행동을 해야 한다.

 

동사무소 공무원의 대사들은 영화 속에서 평안하고 무심히 흘러가지만,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남들보다 괜찮으니, 나중에 더 힘들어지면 오라”는 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간이 넘어 어쩔 수 없다”는 말.


평안하게 들리는 그 말들. 그 또한 삶 속에서 또 다른 피해자일 수도 있고 정말로 평안한 사람일 수도 있다.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영화와 나
서연은 허들에 재능이 있지만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겠다는 식의 과장된 꿈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서연은 알고 있다. 자신의 재능이 삶을 완전히 바꿀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실업팀에 입단해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꾼다.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경기장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버린 운을 줍는 겁니다.”


버티고 견디며 일을 이어가는 나에게 그 말은 겸손과 공감의 문장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아이들은 과연 누가 버린 어떤 걸 주운 것일까. 행운을 줍지 않아도 그저 행복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일까. 이웃과 사회의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려 애쓰는 요즘, 작품 속 허들처럼 사회의 문제들도 내 삶으로 성큼 다가온다. 그래서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 걸까.

 

나는 서연의 ‘4년’을 응원하고 싶다. 친구 민정을 향한 선의를 잃지 않던 때, 아버지의 호출에 달려갈 수 있었던 두 다리, 숨이 차도록 앞만 보고 달리던 그 순간들.

 

 

영화는 서연의 4년 이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일이 손을 잡을 수 없는 사회라는 제도 속에서 보호가 필요하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수많은 사연 중 단 하나를 들려주는 영화지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는 지금 서로에게 조금은 더 친절해 보자는 영화이기도 하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꽃도 다음 비가 내려 그 흙을 씻어 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애초에 흙탕물이 고이는 웅덩이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혹시라도 흙탕물을 뒤집어써 보호받아야 할 이가 있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비’가 되어야 한다.


영화로, 글로, 노래로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보이게 된다.


작품 속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다음이 어디 있냐. 내 처지에 이 정도면 됐지….”


이 농담에 웃을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 안에서 버티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달래며 수없이 되뇌는 말을아이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른스러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게는 바통을 넘겨줄 곳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해서는 안 될 이야기, 아이들이 보지 말아야 할 현실은 조금 더 천천히 듣고 보게 하자.

 


주인공 서연을 연기한 배우 최예빈 님의 노력이 느껴진다. 애니메이터로서 나는 통제에서 벗어난 인체의 미세한 움직임을 유심히 볼 때가 있는데 그의 연기에서 서연이라는 인물을 ‘서연’답게 만드는 모습을 보았다.


배우 권희송 님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친구 민정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보호받지 못한 채 버티는 인물이 애써 유지하는 평온함, 그리고 밀려오는 절박한 이기심을 잘 표현했다.
 

아버지 역의 배우 김영재 님, 박 감독 역의 이중욱 님 역시 현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캐릭터로 미안함과 화가 나는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연기를 통해 영화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한 가족 돌봄 청년의 인터뷰에서 간병하고 있는 삶이 마치 끝나지 않는 마라톤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접했는데 그 고통이 확 와닿았다. 돌봄은 가족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 책임을 나눠서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 중에서도 혼자서만 싸우는 마라톤이 아니라 서로에게 배턴을 넘겨줄 수 있는 계주를 등장시켰다.


돌봄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발생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누구나 돌봄을 받으며 자랐고, 또 언젠가는 돌봐주거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영화를 통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좋은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현실의 ‘서연’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한상욱 감독 (출처: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엔터테인먼트)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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