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교_ 홍익대생
<아가미> 관람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원작 소설을 읽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읽지 않은 채 극장에 갔다. 물론 원작 소설을 미리 읽었다면 더 깊게 몰입하고 짚어낼 수 있는 세밀한 장면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이 영화를 봐도 온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랐다. 만일 책을 무조건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그건 이미 매체로서의 독립성과 생명력을 잃어 매력이 크게 떨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가미>는 그런 우려를 완전히 지웠다. 애니메이션 그 자체의 힘으로 관객을 설득해내는 단단한 주축이 있어 만족스러웠다.
잔잔하면서도 현실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화면들과 담담함 끝에서 문득문득 보여주는 판타지적인 화면 전환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배로 느끼게 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마치 일상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예상치 못한 푸른 물결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며 관객을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끄는 흐름이 인상 깊었다.

특히 주인공 곤의 아가미가 정확히 언제, 왜 돋아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원작을 모르고 볼 때 그 '불친절함'은 곤이라는 인물을 비극적 서사의 틀 안에 가두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설명이 배제된 자리마다 곤이라는 인물의 수수께끼 같은 면모와 모호함, 고립과 외로움이 더 잘 드러났다.
아가미를 가진 곤은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인물에 속한다. 하지만 신체적 특이함으로 괴로워하거나 상처받지 않는다. 되려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 결국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비정상성이라는 외형적 차이가 아니라, 타자를 온전히 품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로부터 비롯된 폭력이 아닐까.
작품을 감상하고 남겨진 감정은 묵직한 불편함이었다. 이녕은 자신의 꿈을 위해 어린 강하를 떠나고, 강하는 곤을 향한 소유욕과 통제를 폭력이라는 서툰 형태로 드러낸다. 해류는 오랫동안 병든 어머니를 홀로 부양하며 외로움과 고단함을 느낀다. 곤의 아버지는 절망 속에서 어린 곤을 데리고 호수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등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결핍과 이기심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인물들을 마주할 때 드는 감정은 단순한 비난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깊은 안타까움이었다. 우리는 강하의 폭력이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춘기 소년 특유의 혼란과 미숙함이었음을 알기에, 그리고 이녕의 선택 역시 삶을 견뎌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음을 짐작하기에 그렇다.
사실 '우린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와 완전히 다른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늘 불가능에 가깝다. 나와 타자의 간극 속에서 우리는 늘 서툴게 서로를 밀어내거나 찌르게 된다. 때로는 자신을 아프게 만들고, 그렇게 온 세상이 생채기로 얼룩지곤 한다.
그럼에도 이 안타까움의 끝에서 남는 것은 불완전함을 끌어안은 채 아파하면서도 서로에게 닿으려 애쓰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일 테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이 가라앉는 깊은 바닷속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가던 곤의 마지막 모습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생채기투성이인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해 기꺼이 깊은 물속으로 뛰어드는 곤의 모습은 우리가 서툴고 아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묵묵히 일깨워주는 것만 같다.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아가미>는 참 감사한 작품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나아가고 있는 깊이와 방향. 그 눈부신 가능성을 이토록 아름답게 답해주었기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스크린과 마주하게 된다.

김수아 _ 순천향대생
<아가미>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서사도, 악을 처치하는 구조도 아니다. 대신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 그 자체를 담담하게 따라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축적이 자연스럽게 장면 전환의 흐름에 정리되어 이러한 태도가 더욱 선명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했다.
특히 강하의 "그래도 살아졌으면 좋겠으니까"라는 대사는 작품의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관통하는 문장처럼 다가왔다. 이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곤이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이어지는 "곤은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문장은 인물의 내면 변화가 언어의 결로 드러나는 순간으로, 문학적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삶에는 거창한 목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정해진 본질 없이 세상에 먼저 던져진 존재라는 실존주의적 관점처럼, 곤 역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살아내는 인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작품은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남기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물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는 아가미가 단순한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라 각 개인이 지닌 상처의 상징과 같았다. 그것은 주류 사회에 온전히 어우러지지 못한 채 상처받는 존재, 혹은 비주류로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곤에게 아가미는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자, 그를 규정하는 고유한 정체성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것은 결함이나 약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곤을 살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상처이면서 동시에 생존의 장치다. "나는 약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다"는 이녕의 말은, 인간이 각자 의존하고 있는 결핍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저마다 숨을 쉬기 위해 붙잡고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상처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작품에서 아가미는 약점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처럼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가미를 지닌 채 그 결핍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오래 남았다.
더빙은 전체적으로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현실적이고 생활감이 느껴지는 톤이어서 담담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와 잘 맞았다. 서술자인 해류의 더빙도 좋았고 강하가 극적인 상황에서 소리치듯 말하는 연기도 마음에 들었다. 작화와 배경 역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한국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작화가 좋았고, 배경이나 공간도 작품이 가진 이야기와 잘 어우러졌다.
<아가미>는 각자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상처와 함께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차효린 _ 이화여대생
"살아줬으면 하니까."
<아가미>를 보며 가장 크게 울림이 남았던 대사다. 영화를 보고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사랑이라고 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연인 간의 사랑부터, 우정, 가족애, 동료애, 자기애까지, 사랑은 그 대상과 관계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영화 속 강하가 곤에게 느끼는 애착 또한 사랑의 한 형태라고 느꼈는데, 특히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부모의 사랑과 닮은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강하는 곤의 비늘과 아가미를 보고, 곤의 정체가 관련 기관에 알려지면 생체 실험을 당할 것을 걱정해 정체를 숨겨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반짝이는 것은 혼자 봐야 한다"는 이녕의 말을 떠올리며 더욱더 곤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 한다.
곤에 대한 강하의 애착은 처음에는 소유욕과 독점욕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곤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할 때면 과격한 행동들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심하게 머리를 잘라주고, 씻겨주고, 함께 동네 구경을 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곤을 돌보고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 이녕이 죽었을 때도 강하는 곤의 정체가 경찰에게 알려지는 것을 염려해 도망칠 수 있도록 놓아준다. 아꼈기에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긴 곤을, 이제는 '살아줬으면 하니까' 역설적으로 세상으로 도망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강하의 애정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닮은 면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온 부모의 사랑은 '그럼에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어릴 땐 부모님이 내 세상의 전부였고, 성장하면서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내 세상을 넓혀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부모님 역시 순간적으로 속상하고 미운 감정을 느꼈겠지만, 결국에는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기에 용서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강하와 곤의 관계 역시 이와 비슷하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온 곤에게는 강하가 자신의 세상 전부였을 거다. 함께 동네를 구경하고, 세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강하를 통해 곤의 세상은 조금씩 넓어진다. 강하가 곤에게 '살아줬으면 해서' 도망치라고 한 이유도 부모의 사랑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녕이 다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 곁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곤이 원망스럽지만, 그럼에도 강하는 곤을 존재 자체로서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자신에게서 벗어나서라도 곤이 자신을 보호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영화를 보는 내내 곤과 강하 사이의 애정이 정말 크고 서로를 향한 애정이 무조건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로맨스나 로맨스 코미디를 볼 때보다 훨씬 벅차고 아름다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애니메이션의 작화도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윤슬이 아주 반짝였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곤과 강하의 관계를 떠올리면 그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아름답고, 벅찬 감정. 어쩌면 곤과 강하는 서로에게 사랑 이상의 존재,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삶의 아가미이지 않았을까.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밀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