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에서 상영하는 작품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이후, 극장은 더 이상 완전히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흥망성쇠를 지켜보기도 했고 응원받기도 했으며, 어떤 날에는 영화 관람 자체가 일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극장은 어떤 응원의 단초를 주는 곳이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위로가 되는 공간임이 틀림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극장에 가는 ‘습관’을 잃었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편안했고 움직여야 하는 수고도 덜어 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졌다. 나만의 작은 극장도 꽤 괜찮은 관람 방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책상이 촬영 현장과도 같은 곳이기에 자리를 쉽게 뜰 수 없다. ‘아가미’를 만들 동안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극장에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극장의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주는지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릴 때의 나는 극장보다 도서관의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극장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다른 감독님이나 영화인들처럼 극장의 기억이 영화 같거나 깊은 의미로 남아 있는 게 몇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연출한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를 봤다. 그 안에 담긴 극장의 시간을 보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흐뭇해졌다. 그리고 나와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의미를 굳이 명명하지 않더라도 극장에 가는 자체의 행복은 다시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 설렘은 ‘극장의 시간들’로 이어졌고, 나의 행복한 영화 보기는 다시 시작됐다.
이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이야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무언가를 하면 종종 그것을 경쟁으로 바라보고 순위를 매기려 한다. 세 분의 감독님이 만든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면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다양한 윤슬을 주는 것이 영화구나, 세 분이 내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구나’하는 마음이 든다.

‘침팬지’-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극장은 친구를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친구가 생기기도 한다. 고도, 모모, 제제. 이들은 영화를 이야기하며 수다를 떨고 서로의 지식을 자랑하기도 하며, 가끔은 특별한 순간을 함께 맞이하는 친구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침팬지 이야기’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계기로 이들은 영화와 극장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모와 제제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극장에는 고도만이 남는다. 그는 다시 극장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청춘의 기억과 영화가 남긴 흔적을 기다린다.

‘자연스럽게’-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노는 장면을 찍고 싶은 감독이 있다. “카메라가 있는데,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을까?”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아이들과 그 장면을 바라보는 감독. 틈틈이 이어지는 대화와 놀이처럼 시작되는 촬영. 그러다 어느 순간 직업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현장. 예측할 수 없는 이 촬영 현장은 재잘거리는 노래처럼 흘러간다.

‘영화의 시간’-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극장에는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소 노동자, 영사 기사, 매니저와 같이 극장의 뒤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사실에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를 떠올리게 하는 영사 기사가 있다. 극장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매니저, 그리고 극장에서 오랜 친구를 우연히 만나는 순간.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극장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된다. 우리가 객석에 앉아 있을 때 관객을 위해 조용히 돌아가고 있는 극장의 시간들이 영화 속에서 드러난다.

‘침팬지’-난 어떤 침팬지일까?

‘자연스럽게’-도레미파솔라시도 같은 현장
아이들의 옷을 입고 어른의 말을 억지로 하는 창작물은 늘 주저하게 된다. 영화인지 몰래카메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러움 속에서 직업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의 수다에 어느새 참여하고 싶어지고 그 속에서 어떤 해답을 얻을 것 같은 반짝임을 느껴 그 주저함이 느껴지지 않은 영화였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솔솔솔미♭’까지 도달해야 하는 영화 만들기의 과정에서, 마치 도레미파솔라시도 같은 즐거운 음악이 들려왔다. 여러 아이의 동작과 표정은 애니메이션으로 그리고 싶을 만큼 훌륭한 오케스트라 같았다. 아이들을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고민할 때면 나는 늘 김민기 선생님의 아동극에 대한 철학을 염두에 두는데, 이제는 윤가은 감독님의 태도와 시선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영화의 시간’-극장의 이름
지금 많은 극장은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광화문에는 아직 고유한 이름을 가진 극장이 있다. 바로 씨네큐브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다가 극장에 와서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고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극장은 소비라는 형태를 가진 가장 특별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극장의 시간을 만든다. 담담한 직업의 태도와 가끔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극장 문을 나서면 곧장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이어져 있는 씨네큐브에서 만난 영화의 시간은 그러한 사람들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많은 일을 견디며 살아남는다. 각자의 싸움은 매일 이어진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는 잠시 일상을 잊게 해 주는 영화일까, 아니면 나 자신과 온전히 마주하게 하는 영화일까. 이 영화는 어디가 아픈지 모를 삶에 적당한 처방전을 건네는 영화라기보다 조금씩 면역력을 키워 주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묘하게 겹치는 이 영화는 지금도 나의 삶을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듯하다.
이명세 감독님의 서재와 엣나인필름 주희 이사님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수많은 영화 자료와 창작자의 작은 흔적도 곁에 두고자 하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경건한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공간, 그리고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사람의 공간. 그 공간 안에 하나하나 닿았을 손길들이 결국 극장의 시간으로 이어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재잘거림 속의 아름다움, 평범한 사람들의 우연과 인연,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 소중했던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는 자꾸 만들어져야 한다. 어딘가 생긴 작은 균열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끔 극장에 앉아 그런 시간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아직 자기 이름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는 극장들도 조금 더 많이 찾아 주었으면 좋겠다.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할 당시 “영화를 사랑했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는 감상평을 들었을 때 큰 기쁨을 느꼈다. 앞으로는 이와 비슷하게 “지금도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이 영화를 통해 극장과 영화를 사랑해 온,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관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란다.이종필 감독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하나가 되는 즐거움. 뿌듯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윤가은 감독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로고송, 불이 꺼지는 순간, 어두운 극장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느꼈던 햇빛을 그리고 싶었다. 극장을 찾은 영화와 함께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장건재 감독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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