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의 영화편지]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청년 정치 백서'

칼럼 / 안재훈 기자 / 2026-03-05 14:00:16
Review

 

2000년 4월. 부산시 북구·강서구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의 공터 연설 장면을 잊지 못한다.


동네 주민 한두 분밖에 없는 공터.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한 정치인의 모습에서, 나는 그 순간 정치인이 ‘실력’이전에 ‘태도’로 애쓰는 사람임을 보았다.


그때 영상을 보며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금 느끼며, 내가 지지하고 옳다고 믿는 사람에게 힘을 보태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청년 정치 백서’는 이념 다큐가 아니다. 청년을 미래의 희망으로 소비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정치적 노동자로 바라본다. 정치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생활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이며 생계와 시간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각자의 방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내용을 더 중립적으로 보여주었다. 의도적인 평행선 연출을 통해 정치를 떠올리며 ‘내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보는 내내 생각할 수 있었다.

 

 

보수와 진보라는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에서 출발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노동하면서, 노동운동을 정치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구 출신의 김현진 씨는 젊은 사업가로, 보수적 가치와 현실 정치의 벽 사이에서 정치인이 되기를 꿈꾸며 정치에 뛰어든다. 서울 출신의 김창인 씨는 진보적 성향의 사회운동가 출신으로,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를 선택한다. 두 사람은 진보와 보수라는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가 있으면서도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청년 정치인의 열망을 공유한다.

 


영화는 이들의 선거 출마 과정과 정치 활동, 현실과 이상 사이의 충돌, 그리고 이후의 삶까지 5년 이상에 걸친 여정을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좌절, 정치 시스템의 벽, 현실적 한계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정치적 이념의 대결보다는 청년이 직접 정치에 뛰어든다는 것의 의미에 주목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딪히는 청년들의 솔직한 삶을 그린다.

 

 

하나의 상황을 가정해 본다. 내가 전혀 말할 기회가 없이, 오직 양쪽의 이야기가 오가는 걸 들어야 하는 테이블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자. 답답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끼어들 수 없는 상황이기에 오히려 더 깊이 있는 사색이 가능해진다. 다큐 영화의 훌륭한 기능이다.


“사람은 도달하지 못할 것에 평등을 요구한다”라는 말을 들은 뒤로, 나는 한동안 내가 노력하던 일의 기여에 대해 말을 멈춘 적이 있다. 다른 직업의 세계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일의 중요한 문제인 독과점과 출발선의 차이, 구조의 불균형은 이 한 문장 앞에서 막혀버렸다.

 


영화를 보며 나는 중간중간 혼자서 그 질문을 내게 대입해 보았다. 어쩌면 정치의 요구는 도달하지 못할 것을 어떻게 믿고 신뢰하며 나아가느냐가 아닐까. 질문은 작품 안에서도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맴돌며 영화와 함께 계속해서 되짚게 되었다.


이 작품은 청년 정치에 대한 낭만을 걷어낸 시선과 실패 이후의 삶까지 기록한 정치 다큐이기도 하다. 선동이나 결론 대신 관찰과 시간을 선택한 태도, 그리고 청년과 정치, 시민을 연결하는 현실적인 질문들은 각자의 직업에 대입하여 현상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영화는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는다. 대신 청년이 정치에 몸을 던질 때 마주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와 개인적 소모, 그럼에도 왜 정치를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가를 묻는다.

 


포기하는 것조차 포기해도 되는 든든한 배경이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시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면 실패와 포기라는 기회조차 없어지는 시대를 살며 두 청년의 노력은 뭉클함을 준다. 작품 안에는 세금이 헛되이 쓰이는 것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 차이가 등장하는데 그 장면만 떼어 보아도 아주 중요한 차이를 알게 된다.

 

정치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거의 모든 조건은 정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잘 모르는 부분이 있지만 외려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이는 앞선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공터 연설을 보며 얻은 마음이다.


내가 우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우리가 불합리함을 당할 때 우리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없을 수 있다.


독립영화 방식의 개봉을 하며 나는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유세 장면을 생각한다. 부끄러운 것은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할 이야기가 없거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 일일 것이다.

 


올해 개봉 작품을 준비하며 만드는 것 외에 보이는 것의 최선을 고민하는데 이 다큐는 ‘청년 개봉 백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청년 정치 백서-쇼미더저스티스’는 6월까지 로드쇼 형식으로 개봉한다고 한다. 개봉 방식 자체가 이 직업의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모든 영화가 수백 개의 스크린에서 거대한 광고비를 들이며 수백만 관객을 목표로 개봉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선거운동을 해보면 세상의 큰 이치를 배운다고 하는데 개봉 또한 한 번 경험하게 되면 완전히 다른 걸 배우게 된다. 김창인 씨와 김현진 씨가 이 개봉의 과정을 보며 정치로 바꾸고자 했던 세상의 또 다른 노력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애니메이션 개봉은 언제나 할리우드 작품이나 일본 작품을 기준으로 이야기되기에, 한국에서 독립영화 방식의 개봉에 대한 담론이 부족하다. 독립영화와 다큐처럼 힘든 애니메이션의 제작, 개봉 방식, 그리고 참여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 작품의 개봉 방식을 보며 작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세상에 나오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극장의 변화와 OTT의 역할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창작자들이 어떻게 자라날 수 있는지 축적의 시기를 놓친 한국 애니메이션에 이 다큐의 개봉 방식은 자기의 빛깔을 가진 이들이 관객을 만나는 것에 충분한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영화는 ‘정치 영화’라기보다는 ‘청춘 영화’다. 진보가 맞냐 보수가 맞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 발버둥 치는 두 청춘의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 정치판 더럽네”하고 욕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저기서 고군분투하는 저 청년들이 내 모습 같아서 짠하다’라는 마음, 그 연민의 감정을 가져가신다면 감독으로서 더 바랄 게 없겠다.
이일하 감독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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