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
중국의 30∼40대에게 어릴 때 본 애니메이션을 꼽으라고 하면 대요천궁, 조롱박 형제, 검은 고양이 경장 등을 떠올릴 것이다. 이 모든 작품을 만든 곳이 바로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다.
1922년 만씨 형제가 만든 수전동화문타자기는 중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장을 연 작품으로 1957년 문을 연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는 만씨 형제를 비룻해 전가준, 오응거 등 유명 예술가들이 모여 중국 미술영화의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가 만든 세계 최초의 수묵 애니메이션 엄마 찾는 올챙이(1961), 피리 부는 목동(1963)은 중국 산수화의 아름다움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걸작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 전통 종이공예인 전지(종이를 오려 여러 모양을 만드는 공예) 기법을 차용한 전지 애니메이션 조롱박 형제는 중국의 여러 세대가 함께 추억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 둔황 벽화와 스토리를 차용한 아홉 빛깔 사슴, 신장 위 구르족의 민간 설화를 묘사한 인형 애니메이션 아판티의 이야기,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아동문학 작품을 토대로 한 목각인형 애니메이션 신비한 붓, 국내외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세계적 명작 승려 세 명, 대요천궁, 나타요해 등도 모두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가 만든 작품이다.
피리 부는 목동
대요천궁
‘타인(의 작품)을 모방하지 않으며 자신(의 작품)을 중복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묵, 전지 등 전통 기법과 중국의 색채, 음악을 활용하는 등 중국식 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는 당대 중국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력을 자랑하며 중국학파란 애니메이션 예술 장르를 개척했다.
리커란 등 당시 최고의 화가, 뮤지션, 문학가, 제작진이 대거 참여해 시간과 제작비에 상관없이 여러 기법을 시도하면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던 건 계획경제를 이끈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도입되자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는 더이상 손익을 고려하지 않고 예술적 가치만 추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1980년대 일본, 미국 애니메이션이 유입되자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은 광저우, 선전 등 남방 도시에 내려가 이익이 큰 외주 제작을 맡기 시작했다.
“강산을 점령하는 것이 쉬울 수 있어도 지키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런 시국에서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긴 정체기를 보내야 했다.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는 2020년 말 중국 애니메이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의 요괴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단편 애니메이션을 기획했다. 이게 바로 빌리빌리와 공동 출품한 중국기담이다.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중국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란 명성에 걸맞은 좋은 작품으로 당당히 돌아온 것이다.
중국기담
중국기담
중국기담은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와 빌리빌리가 연합 출품한 작품으로 총 8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이뤄졌다.
2023년 1월 1일부터 빌리빌리에서 방영을 시작했으며 매주 일요일 1편씩 공개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6편의 작품이 공개됐으며 조회수는 1억 7,000만 건을 넘어섰다.
8편의 단편 작품은 모두 중국의 요괴 이야기를 차용했지만 10명의 감독이 2D, 3D, 카툰렌더링, 전지, 인형, 수묵 등 각기 다른 기법으로 향토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과학적 상상, 자아에 대한 사고, 인성에 대한 탐구 등 다른 메시지를 담았다.
소요괴의 여름
아아아
중국기담이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고 대중에게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첫 번째 작품 소요괴의 여름과 두 번째 작품 아아아의 영향이 크다.
소요괴의 여름 이야기의 배경은 서유기지만 주인공은 손오공 등 유명 캐릭터가 아닌 이름 조차 없는 작은 돼지 요괴다. 곧 길을 지나갈 당승 일행을 잡을 화살을 만들라는 명을 받은 돼지 요괴는 상사의 것보다 명중률이 훨씬 높은 화살을 만들었지만 상사로부터 “지금 날 교육하는 거냐” 며 꾸지람을 듣고 한정된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보다 몇 배 이상의 일을 맡는 등 현대사회 직장인들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특히 엄마가 돼지 요괴에게 “물을 많이 마셔라, 건강을 잘 챙겨라” 라고 한 말에 모든 직장인이 공감하고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관객을 웃고 울게 하기에 이 작품은 대중에게 호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캐릭터와 배경 디자인도 특색 있고 인상적이다. 돼지 요괴가 푸른 하늘 밑 큰 나무 아래에 누워 있는 장면을 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 듯 마음이 가뿐해진다.
두 번째 작품 아아아는 특이한 화풍과 기이한 스토리로 SNS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지괴소설(위진남 북조 시대에 쓰여진 기괴한 이야기) 양선서생 스토리를 차용한 이 작품은 대사가 없고 흑, 백, 적 3색으로만 화면을 구성해 함축적이고 운치 있게 욕망과 인심을 표현했다.
소만
중간에 삽입된 2인칭 ‘당신’ 으로 시작하는 자막은 관객들에게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강한 몰입감을 준다. 마지막에 백조 소녀의 진주 귀걸이가 백조떼로 변해 날아가는 장면은 무궁무진한 상상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한 아이의 상상 세계와 심적 성장을 그린 다섯 번째 작품 소만이다. 주로 빨간색으로 이뤄진 배경 색채, 당나라 궁중 예악을 사용한 배경음악, 그림자극과 전지 기법을 차용한 이 작품은 중국의 색이 농후하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지금 온전히 수작업으로 만든 전지 애니메이션은 조롱박 형제 이후 거의 볼 수 없던 기법의 작품이다.
캐릭터, 배경 등을 모두 종이로 만들고,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게 관절에 따라 분리시키고 한 프레임씩 움직이면서 촬영한 제작자들의 노력과 장인 정신에 큰 박수를 보낸다.
긴 정체기 동안 IP만 많이 보유한 채 저작권 소송에 매달렸다는 비난에 시달린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는 중국기담을 통해 대중에게 다시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가 이번 계기로 승승장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채로운 기법을 탄생시키며 애니메이션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친 상하이미술영화제작소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최자인
· 모꼬지 콘텐츠사업본부 과장(모꼬지 한·중 프로젝트 책임 담당자)
· 중국 링동(광저우 링동 창상문화 과기유한공사)창의센터 기획 PD
· 한중일 대학생 교류 프로그램 CAMPUS Asia 1기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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