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의 영화편지]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양양'

칼럼 / 안재훈 기자 / 2025-10-15 14:00:48
Review

 

‘양지영’이라는 이름을 불러본다.


누군가의 권리에 의해서 잊힌 이름.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그렇듯 사회에 분명히 존재했던 사람도 죽고 나면 잠시 가족의 기억 속에 머물다 이내 사라진다.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여러 감정을 거쳐 새로운 방향으로 치닫는다. 감독은 이 두 가지 방향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결국 하나로 만나게 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


부모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차별적 대우와 편견 속에서, 그것을 온전히 지켜보며 인간의 품성과는 무관한 편견과 답답함을 보게 한다. 무엇을 눌러가며 살아왔는지, 또 자신이 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처세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이 영화를 통해서는 다른 각도에서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세밀하게 살피는 마음으로.


죽음으로 잊힌 이름도 아프지만 그 죽음의 이유는 답답하다. 영화처럼 우연히 밝혀져 목소리를 낸 이들도 있었지만 과거에는 소리 없이 묻혀 사라진 여자들의 존재가 훨씬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대단한 사회 문제나 차별로 인해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말하진 않는다. 그래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엔 약해 보인다. 가족사에 관한 얘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가족사는 이들만의 가족사가 아니다. 퇴적암처럼 오랜 세월 쌓여 비록 한층 한층의 두께는 얇아도 깨뜨리기 힘든 견고함. 우리는 어쩌면 그 층 사이사이에서 다시 기억해야 할 이름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잊힌 여성들의 이름이 다시 불리는 순간을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먹먹한 느낌의 답답함, 그것을 어떻게 삼
켜야 할까.


‘양양’의 양지영은 이 영화의 핵심이지만 결국 멈추어져 있는 인물이다. 듣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멈출 수밖에 없다. 동네의 구성원과 사회에 화가 나기 전에, 가족들조차도 수치심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고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또 다른 ‘양지영’들을 위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다. 특별히 새로운 것을 이야기할 정도로 큰 삶을 살지 않았다는 아버지는 누나였던 그녀가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정서적 세계를 지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딸을 키우면서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기억될 수 있을까. 우리가 모르는 빛나는 순간을 가졌던 양지영 씨의 죽음에 대해 묻고 싶다. 그녀가 온전히 살았으면 어떠했을지 모를 삶이 끝나 버렸다는 사실, 그 이유와 원인, 그 과정을 둘러싼 태도들이 더욱 견디기 힘들게 한다.

 


“고모처럼 되지 마라.”
술에 취한 아버지가 한 말에 주연은 처음으로 고모 양지영의 존재를 알게 된다. 고모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불효자로 치부되어 잊힌 인물이었다. 잊힌 게 아니라 죽어버린 존재임에도 봉인되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감독이자 양지영의 조카인 주연은 그렇게 봉인된 고모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그저 개인의 소소한 일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고모는 달랐다. 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으며 감성적이고 문학적 취향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시를 사랑한 만큼 시 같은 사랑을 비밀처럼 품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고모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모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었는지 아니면 내·외부적 압력에 의해 휘말린 비극이었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연은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와 사라졌거나 지워진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은폐되고 잊히게 됐는지 마주하게 된다.


아들을 낳기 위해 견뎌야 했던 고된 시기를 거친 할머니는 결국 딸과 아들을 다르게 대하는 어머니가 된다. 영화의 시작처럼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주연의 집이 이 정도라면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여성들은 어떤 상황에 놓였을까.

 

그것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되풀이의 시작이 되었을까.

 

고모가 남긴 삶의 흔적, 그녀의 감정과 관계,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주연은 잊힌 이름과 존재를 다시 불러내려는 의지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 마지막 의지는 영화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이 머리가 좋다는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말을 늘어놓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감독, 주연의 눈빛과 교사였던 아버지의 답변에 탄식이 나오지만 주연의 눈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고모 양지영은 사망 시점조차 엉터리로 기재된 채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 여성으로서의 삶 모두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양지영이 밑줄을 치며 읽었던 시집이 등장하는데 그 흔적이 무엇보다 아프게 다가온다. “잊히길 원한 것 같다”는 식으로 죽은 이의 마음을 제멋대로 대변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그 말들. 이 문장에 그어진 밑줄이 오히려 그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듯했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고모의 죽음과 당시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목 때문이었는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가족의 명예 때문이었는지 감독이자 딸인 주연은 묻어둔 그 사건에 대해 묻는다. “고모처럼 내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면 엄마는 어떨 것 같아?” 

 

순간, 정적이 흐른다. 비극적인 사건이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와 자매라면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지금도 장애인의 교통 복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자신은 결코 장애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늙음이나 재해 역시 자신에게는 닥치지 않을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직면하는 순간, 어머니의 침묵은 곧 이 영화가 내놓는 또 하나의 답이 된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얼마 전부터 나는 스튜디오 식구 부모님들께 소식을 전할 때 아버님 대신 어머님 이름을 먼저 적어 보내고 있다.


반응을 일일이 듣진 못했지만 늘 집안 대소사에 앞에만 적히던 아버님의 이름 대신 어머님의 이름이 먼저 보이자 새롭게 느껴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소중한 날의 꿈’에서 주인공 이랑의 남동생은 이랑을 언니라고 부른다. 나 또한 어릴 적에 나보다 나이 많은 여성을 누나가 아니라 언니라고 불렀다. 장남이라 누나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아마 누군가를 따라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언니라고 부르고 불리는 사람들, 누나라고 부르고 불리는 사람들.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 친밀한 호칭인 언니와 누나, 여성의 이름이 묘비에만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제대로 불리고 기록되는 순간을 극장에 앉아 생각하게 된다. ‘양양’은 그리하여 또 다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다.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끝내려 했던 양지영.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결심이 자살이 아니었을 것만 같아 더욱 괴롭다. 사랑이었던 이름의 헤어짐이 자살이어서도 안 된다.


양지영이라는 이름은 관객 수만큼 불릴 수 있다. 사회적 입막음으로 인해 슬퍼할 사람조차 제대로 없었던 이름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이 더 많은 관객에게 도달해 양지영이라는 이름이 불리고, 그 이름이 또 다른 양지영을 불러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금은 이름조차 흐릿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여자 친구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기를. 그리고 그 이름들이 사회에서 온전히 불리길 바란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모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고모를 떠올리는 건 결국 외면했던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고, 주변의 가깝고 먼 죽음을 떠올리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슬픔과 분노, 괴로움과 아련함, 그리움. 여러 감정이 스치고 요동치는 마음속에서 결국 저는 이름과 애도 없이 사라질 수 없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수치와 낙인이 사라진 곳에서 잊힐 수 없는 이야기는 다시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전히 익명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죽음을 대신해 고모의 존재를‘양양’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호명합니다.


감독 양주연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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