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강의 웹툰 이야기 22] 故이우영… 검정고무신을 벗어두고 떠난 이를 추모하며

칼럼 / 서범강 회장 / 2023-04-27 13:00:00
Column
#1
늦은 저녁 지인들과 저녁 자리를 하고 있을 무렵 전화가 왔다. 언제나 그렇듯 차분한 톤의 반가운 목소리였다. 아이나무툰을 처음 열 때부터 맺어온 특별한 인연,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님의 전화였다.
“부탁드릴 게 있어 전화드렸는데요···”
“네, 뭔가요? 말씀만 하세요. 작가님 부탁이라면 언제나 오케이죠.”
“저희 대학에 특강을 한번 해주셨으면···”
“언제인가요?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꼭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작가님, 저희 오랜만에 소주 한잔 하시죠?”
“와∼ 정말요? 그럼 너무 좋죠!”
“네, 그럼 다음 주 정도에 어떠세요? 정확한 날짜는 다시 얘기 나누시고요.”
“좋아요, 그럼 연락 주세요. 언제든 좋으니 한잔 해요.”
“네 알겠습니다, 작가님.”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얼마 뒤 그가 고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나이의 그가 세상을 떠난 이유는 사고도, 지병도 아닌 안타까운 선택이었다. 누구보다 순하고 순수하고 배려심 가득했던 그가 세상과 이별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작품 검정고무신 때문이었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이 이우영 작가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에 마음을 다잡는다.

#2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오래전 이우영 작가님에게서 한번 만나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는 약속을 정해 만날 수 있었는데 식사를 하면서도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경직돼 있었고 한눈에 봐도 무척 불안한 모습이었다.
“작가님,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는 잠시 망설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사님, 저 좀 도와주세요.”
“네 그럼요, 당연히 도와드릴게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질문을 했지만 실은 이미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아온 검정고무신의 저작권 문제와 관련한 기사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었다.
당연히 식사 약속을 했을 때는 내심 필요한 게 있다면 힘이 돼야겠다고 다짐을 한 터였으나 작가님의 의중을 알아야 했기에 조심스레 분위기를 살폈다.
작가님을 통해 들은 얘기는 기사로 봤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가장 큰 아픔은 검정고무신을 탄생시킨 작가 본인이 더이상 검정고무신으로 창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아픔은 작가인 당사자가 검정고무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아픔은 부모님께서 운영하는 농장에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사용하고 아이들에게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피소됐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우선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아는 선에서 최대한 정보를 드렸다. 또 아는 변호사를 통해 최대한 지원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작품을 함께 한 파트너이자 동행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아이나무가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울먹이던 모습을 보였던 그는 다행히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즈음에는 힘을 내겠다며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안심하고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보다 늘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던 그의 이타심이 만들어낸 보호색이었음을 바보같이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 작가님과 저작권 문제 해결 방법이나 상황에 대해 가끔씩 의견을 나눴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나중에 필요하면 말씀드릴 테니 그때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3
사실 그때는 내 제안으로 신작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던 시기였기에 어쩌면 새로운 작품에 집중해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다.
신작을 준비했던 이유와 의도는 분명했다. 당연히 검정고무신에 대한 권리는 반드시 찾아와야 할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님에게도 또 다른 대안 또는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안했던 게 더 이상 기영이, 기철이가 아닌 새 캐릭터를 탄생시키자는 것이었다. 작가님께서는 기영이와 기철이의 사촌 이야기, 후손의 이야기를 다뤄보자는 의견을 주기도 했는데 난 기왕 하는 거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게 좋겠다고 했다. 혹여 조금의 꼬투리라도 잡힐까 염려한 탓이었다.
그렇게 많은 의견이 오가며 서진이라는 아이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세균들의 이야기를 삼국지에 접목한 유토피아라는 작품을 만들고 보드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아이들이 미스터리한 기차를 타고 시공간을 초월한 모험을 하는 블루마블이란 작품도 준비했다. 작품을 준비하는 내내 작가님도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아이나무는 아이나무툰에 신작 유토피아를 발표하고 아이나무가 출판사로서 내는 첫 단행본을 이우영 작가님의 작품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님과 난 우스갯소리 같지만 진지한 마음으로 과거의 추억 이야기가 아닌 현대의 일상을 다루는 새로운 캐릭터들의 이야기 하얀운동화라는 작품을 기획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하얀운동화는 그저 둘만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을 뿐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됐다. 또 다른 돌파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작가님은 용인과학예술대 교수가 돼 열정을 태웠고 작품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못했다. 중간중간 특강을 부탁하면 열 일 제치고 찾아가는 게 전부였다.
내가 확신하는 건 검정고무신에 대한 그의 애정과 마음은 누구보다 컸다는 것이다. 그 크기만큼 더 이상 작품을 하지 못하게 된 마음의 무게는 그를 고통스럽게 짓눌렀을 것이며,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쉽게 내비치지 못한 속내는 그를 무섭도록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까지 피소되는 일을 겪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 답답하고 죄송스러웠을까.

 

#4
이 글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하진 않겠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 글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진실에 다가서는 추진력이 되기를 바란다.
만화나 웹툰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의 위치에서, 누군가는 작품을 빛내는 역할을 하는 기업의 위치에 선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아는 선에서 갖는 확신과 믿음 중 하나는, 대개의 기업과 대표는 만화와 웹툰에 진심이고 선한 목적을 향한다는 것이다. 다만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순 없어서 가끔씩 소수의 불순물 같은 일부가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르거나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소수의 일부가 선한 마음으로 옳은 방향을 향하려는 수많은 기업과 대표를 욕보이고 불신과 오해의 프레임 속에 갇혀 상처받게 하는 것에 분노한다. 그래서 옳지 못한 소수의 행위를 차단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겠다. 그것이 올바른 다수의 기업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창작에 몰두하는 작가들에게 필요한 상생의 길이자 지속 성장이 가능한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우영 작가님과 내 마음이 서로에게 닿았듯, 아직은 만화와 웹툰을 하는 기업과 창작자들이 서로 믿고 위하고 함께하는 일이 더 많이 존재하듯 마침내 우리의 동행은 빛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검정고무신을 벗어두고 떠난 이여, 난 아직 그대가 많이 그립다.

 

 

 


서범강
·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 아이나무툰 대표

 

 

 

 

 

 

아이러브캐릭터 / 서범강 회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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