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실 그때는 내 제안으로 신작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던 시기였기에 어쩌면 새로운 작품에 집중해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생각했다.
신작을 준비했던 이유와 의도는 분명했다. 당연히 검정고무신에 대한 권리는 반드시 찾아와야 할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님에게도 또 다른 대안 또는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안했던 게 더 이상 기영이, 기철이가 아닌 새 캐릭터를 탄생시키자는 것이었다. 작가님께서는 기영이와 기철이의 사촌 이야기, 후손의 이야기를 다뤄보자는 의견을 주기도 했는데 난 기왕 하는 거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게 좋겠다고 했다. 혹여 조금의 꼬투리라도 잡힐까 염려한 탓이었다.
그렇게 많은 의견이 오가며 서진이라는 아이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세균들의 이야기를 삼국지에 접목한 유토피아라는 작품을 만들고 보드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간 아이들이 미스터리한 기차를 타고 시공간을 초월한 모험을 하는 블루마블이란 작품도 준비했다. 작품을 준비하는 내내 작가님도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아이나무는 아이나무툰에 신작 유토피아를 발표하고 아이나무가 출판사로서 내는 첫 단행본을 이우영 작가님의 작품으로 장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님과 난 우스갯소리 같지만 진지한 마음으로 과거의 추억 이야기가 아닌 현대의 일상을 다루는 새로운 캐릭터들의 이야기 하얀운동화라는 작품을 기획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하얀운동화는 그저 둘만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을 뿐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됐다. 또 다른 돌파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작가님은 용인과학예술대 교수가 돼 열정을 태웠고 작품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못했다. 중간중간 특강을 부탁하면 열 일 제치고 찾아가는 게 전부였다.
내가 확신하는 건 검정고무신에 대한 그의 애정과 마음은 누구보다 컸다는 것이다. 그 크기만큼 더 이상 작품을 하지 못하게 된 마음의 무게는 그를 고통스럽게 짓눌렀을 것이며,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쉽게 내비치지 못한 속내는 그를 무섭도록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까지 피소되는 일을 겪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 답답하고 죄송스러웠을까.
#4
이 글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하진 않겠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 글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진실에 다가서는 추진력이 되기를 바란다.
만화나 웹툰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의 위치에서, 누군가는 작품을 빛내는 역할을 하는 기업의 위치에 선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아는 선에서 갖는 확신과 믿음 중 하나는, 대개의 기업과 대표는 만화와 웹툰에 진심이고 선한 목적을 향한다는 것이다. 다만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순 없어서 가끔씩 소수의 불순물 같은 일부가 해선 안 될 일을 저지르거나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소수의 일부가 선한 마음으로 옳은 방향을 향하려는 수많은 기업과 대표를 욕보이고 불신과 오해의 프레임 속에 갇혀 상처받게 하는 것에 분노한다. 그래서 옳지 못한 소수의 행위를 차단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겠다. 그것이 올바른 다수의 기업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창작에 몰두하는 작가들에게 필요한 상생의 길이자 지속 성장이 가능한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우영 작가님과 내 마음이 서로에게 닿았듯, 아직은 만화와 웹툰을 하는 기업과 창작자들이 서로 믿고 위하고 함께하는 일이 더 많이 존재하듯 마침내 우리의 동행은 빛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검정고무신을 벗어두고 떠난 이여, 난 아직 그대가 많이 그립다.
서범강
·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 아이나무툰 대표
아이러브캐릭터 / 서범강 회장 master@ilovecharacter.com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