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현미 감독은 웹애니메이션 < 로씨 > 와 단편 애니메이션 < 피아노와 아이 >를 통해 아름다운 작화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지금까지 선보인 작품들 모두 결이 달랐듯 아직 공개되지 않은 차기작 < 비잇 , 나무 > 도 새로운 형태라고 한다. 성장에 대한 욕심이 강한 만큼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의 업은 매력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이 감독은 생각한다. 그래서 숙련공이 기술을 연마하듯 매일매일 그림을 그린다.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그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현미라고 한다.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는 집안 사정 등이 여의치 않아 국어교육과로 진학했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했다. 시각디자인과 전공수업의 과제가 내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때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계속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졸업 후 여러 일들을 겪는 동안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 다시 한예종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배웠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하게 되기까지는 운이 많이 따랐다. 운이 좋아서 복수전공한 시각디자인과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날 수있었고, 또 그렇게 만든 첫 작품이 상을 타면서 사람들이 작품을 좋아해주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깨달았다. 첫직장이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하는 회사였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행운이었다. 지금은 그 행운들에 보답 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최근작 <로씨>를 소개해달라
로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강아지 로씨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 기가 총 10편으로 하나의 옴니버스처럼 구성된 웹애니메 이션이다. ‘ 잘 못해도 , 서툴러도 괜찮아. 네 곁에는 너를 지켜봐주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 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2016년경 한예종 졸업작품으로 내기 위해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구상을 하고 , 같은 해 컬러가 없는 라인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1차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2018년 공모전을 통해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컬러를 입히고 웹애니메이션 형태인 지금의 모습으로 공개 됐다.
<로씨>는 네이버 그라폴리오, 밀리의서재 웹애니메이션 공모전 당선작인데 진행 과정이 어땠는지?
공모전은 우연히 배너 광고를 보고 도전하게 됐다. 로씨는 처음 구상은 웹애니메이션이었다가 옴니버스 방식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시 웹애니메이션으로 해체돼도 무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공모전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1 편 이상의 완성작이 필요해 졸업작품으로 준비했던 부분들을 바로 제출했고 , 당선이 결정된 후에 컬러를 입히는 등후작업을 거쳐 최종 완성했다. 로씨를 웹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웹애니 메이션은 각 편이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기 때문에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을 넣는데 , 이 크레딧 아래에 짧은 클립을 넣을 수 있었다. 구상은 했지만 분량상 넣을 수 없었던 여러 장면들 , 남아 있던 이야기를 구현한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만 만들었다면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 피아노와 아이 > 도 소개해달라.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피아노와 아이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가 갑자기 피아노를 거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회사를 다니던 시절 구상했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며 많은 그림을 그리면서도 점점 개인 작업에 대한 갈망이 커져 가던 시기였다. 그러나 여건상 애니메이션 작업은 불가능 해 ‘ 한 컷이라도 그리자 ’ 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그 한컷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리고 , 그다음에 이어질 것 같은 이야기를 시간 될 때마다 이어 그렸다. 이렇게 연작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들어뒀던 것 중 하나였는데 , 한예종에 들어갔을 때 다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림을 정말로 좋아 하지만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던 나 , 정말 좋아하는데 떠올리면 힘든 그림이라는 존재 등등 그런 나의 감정이 피아노와 아이에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 피아노와 아이 > , < 로씨 > 모두 동화적인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워낙 그림에 욕심이 있다. 매력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이 업이라고 여기고 매일매일 숨 쉬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편이다. 특정한 결과물을 얻고자 하는 행위라기보다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 그림을 연마하는 일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 이런 노력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도움이 되는것 같다. 그리고 이런 꾸준함이 나의 가장 큰 재능이라 여겨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성실할 때 애니메이션을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은 기나긴 작업이고 , 프레임을 쌓아나가야 하며 , 마감도 지켜야 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노력과 꾸준함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이 그림에의 욕심과 만나서 결국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게 된 게아닌가 싶다.
대부분 대사가 없는 작품인데, 넌버벌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는지?
나는 애니메이션의 많은 특성 중에서도 그림이 움직인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끼곤 한다. 한 장의 그림이 그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되고, 이미지가 영상이 되어 한껏 움직이는 것이 정말로 재미있다. 그러다 보니 말이나 대사보다는 움직임으로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듯하다. 예를 들어 캐릭터의 성격이나 상황을 표현할 때 , 그 사람이 느리게 걷는 모습이라든지 고개를 획 돌린다든지의 모습만으로도 표현되는 부분이 있다. 대사가 없어도 충분한 것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릴 적부터 이솝 우화 같은 짧은 이야기 , 상징적이기에 해석이 다양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읽을 거리가 적으면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가 더 커진다. 내 작품도 많은 대사를 부여해서 해석의 방향을 콕 집어주기보다 보는 이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생각하고 , 움직이고 , 받아들이길 바란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비잇, 나무>는 어떤 작품인가?
꽃을 사랑한 나무의 이야기다. 정체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작들이 이미지로부터 시작돼 파생된 이야기였다면 비잇 , 나무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먼저 떠올랐다는 점이 다르다. 형태적으로도 실험적인 부분이 있어 대중에 공개했을 때의 반응이 매우 궁금하다. 이미 완성했지만 배급을 시작했음에도 아직 선보일 기회가 없었 다. 조만간 선보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업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업자는 많은데 마케팅 쪽은 활발하지 않은 것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좋은 작품을 꾸준히 만들다 보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지점에 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 로씨를 만들 때 상업적 측면에서 롤모델로 삼았던 것은 사이먼스 캣이라는 웹애니 메이션이었다. 독립애니메이션이 SNS에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면서 지금까지도 계속 만들 어지고 있는 경우다.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기 위해서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창구의 모색을 통해 시장이 활성 화됐으면 좋겠다.
향후 계획은?
현재는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중이다. 피아노와 아이와 로씨가 달랐고 , 비잇 , 나무가 또 다르듯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애니메이션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아직은 성장하는 단계이며 , 도전할 수 있는 한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다. 오래전 첫 작품 등대를 만들었을 때 ‘ 앞으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20개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게 가능할까 싶다. (웃음) 하지만 10편은 가능하지 않을까? 우선 그걸 목표로 하겠다. 느리더라도 천천히 , 소중히 만들 것이다. 나는 애니메이션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현미감독
·<비잇, 나무> 2020
·<로씨> 2019
·<피아노와 아이> 2016
·<등대> 2008
·<이웃>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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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1.4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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