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D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지만 오히려 2D 애니메이션 수요는 늘고 있다. 3D 애니메이션을 찾는 곳은 줄고 있지만 2D 일감은 일손이 부족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우리의 기회는 바로 여기에 있다. 3D 기술로 2D 작품을 만들 수 있는 3D 카툰렌더링을 활용하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것이다. ” 모두들 애니메이션산업이 위기라고 입을 모으지만 이진훈 사이드9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3D 제작사와 2D 제작사가 협력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자신한다.
삼양라면 애니메이션 광고로 주목받았던데? 광고가 나간 이후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유튜브나 지하철에서 광고를 본 업계 관계자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우리의 강점인 3D 카툰렌더링 기술과 퀄리티를 업계에 한 번 더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가 돼 기뻤다. 덕분에 3D 카툰렌더링 제작 관련 문의도 부쩍 늘었다. 그중에는 유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도 있고 해외 프로젝트들도 있다. 광고를 만들 때 무척 힘들었지만 예상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고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제작하느라 고생한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3D 카툰렌더링에 집중한 배경은? 사이드9은 다른 제작사와 달리 일본의 2D 애니메이션 외주 제작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사실 대학생 때 알게 된 일본의 아라카미 신지 감독이 2004년 3D 카툰렌더링 기법을 최초로 상용화해 만든 작품 애플시드(Apple seed)를 보고 3D 기술로도 2D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 나중에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설립 초기부터 2D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3D 카툰렌더링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기술적 노하우와 제작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그 결과 최근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공각기동대 , 울트라맨 제작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작품에서 3D 카툰렌더링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3D 기술로 2D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향하는 이유는? 예전부터 ‘ 2D는 작화 , 3D는 컴퓨터그래픽 ’ 이란 확연히 구분되는 제작 파이프라인과 장르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앞으로는 이들의 구분이 사라지고 기획과 제작 업무도 합쳐질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2D 작화가 가능한 인력이 줄어들면서 숙련된 인력을 구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애니메이션산업의 전 분야가 발달된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고자 2D · 3D 제작사들이 협력했고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력의 질과 양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글로벌 애니메이션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하이틴 이상을 타깃으로 한 2D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서도 흥행할 것이라 보고 있었다. 수년 전부터 캐릭터 라이선싱이나 완구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있고 그 공간을 모바일게임과 동영상 플랫폼이 차지하면서 이제는 유아동에서 벗어나 하이틴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유아용은 3D , 하이틴 · 성인용은 2D란 등식이 있지 않나. 그래서 3D 제작사지만 2D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비했다. 앞으로 2D 애니메이션 시장은 지금보다 더욱 커지겠지만 일감을 소화할 수 있는 2D 제작사는 한정돼 있다. 우리는 2D 영상과 같은 퀄리티를 구현하는 3D 카툰렌더링 기술과 더욱 효율적인 파이프라인으로 2D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자리를 확고히 잡을 것이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이 위기에 놓여 있다고 보나?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산업이라고 말할 때는 보통 유아동용 3D 애니메이션 IP와 제작사를 중심에 놓고 얘기한다.
뽀로로 , 로보카폴리 , 출동! 슈퍼윙스 , 미니특공대 등 모두 유아동이 보는 3D 애니메이션 아닌가. 그리고 이를 만든 제작사가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의 주류로 일컬어지는데 , 외주를 받아 해외 작품을 만들고 있는 2D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산업의 주류에서 배제돼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애니메이션산업 전 분야를 본다면 위기는 결코 아니다. 엄밀히 말해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상품 제조 , 유통 분야의 위기일 것이다. 내가 봤을 땐 자체 IP는 없을지언정 금전적 측면에서 알짜인 곳은 2D 애니메이션 회사들이다.
오히려 이들은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매출을 더 올릴 수 있어도 일손이 없어 물량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2D · 3D 제작사가 협업해 호황기의 열매를 같이 나눌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2D 제작에 부족한 인력을 3D 기술력으로 대체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상당하다. 현재 코로나19로 라이브액션 콘텐츠를 만들지 못한 글로벌 OTT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더욱 집중하면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일감이 일본에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3D 카툰렌더링이 준비된 제작사가 더 많았다면 새로운 시장을 함께 개척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면 사이드9의 전략은 무엇인가?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기존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차별화되는 포인트를 찾고 있었는데 2D 애니메이션을 짧게나마 경험하면서 3D 카툰렌더링의 잠재력을 더 빨리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3D 제작사가 아닌 곤조 , 프로덕션I.G 같은 일본의 전통적인 2D 제작사들과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엿봤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3D 카툰렌더링 기술에 대한 수요가 점차 커질 것이란 예상은 적중했다. 한국이나 일본 , 중국 등지에서 2D 작화가 가능한 인력은 줄고 있지만 2D 애니메이션의 공급과 수요는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흐름 속에서 틈새시장을 노렸고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한 것이 바로 3D 카툰렌더링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3D 카툰렌더링 분야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서고 타깃층을 높인 작품 제작에 집중할 것이다. 현재 제작이 한창인 코드네임X가 그 전환점이 될 것이다. 또한 기본기를 더욱 탄탄하게 갖춰 기획부터 완성까지 작품의 전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역량을 키워나가겠다.
사이드9이 어떤 제작사로 기억되길 바라나? 2D , 3D 애니메이션 모두 기획 ,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지향한다.
특히 한국의 좋은 선례가 되는 제작사가 되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우리나라 3D 제작사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선도적인 회사가 되고자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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