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영상 제작 분야에서 일한 지 10여 년쯤 됐다. 애니메이션 PD로 시작해 버추얼 프로덕션 쪽에서 활동하다 다시 애니메이션계로 돌아왔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 많은 분야에 도전해 보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됐다. 이야기를 만들고 자체 캐릭터 IP로 다양한 사업을 해보는 것이었다. 현재 애니메이션 브나브나(BNABNA) 제작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가넷픽쳐스가 내놓는 첫 작품인 만큼 어깨가 무겁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비디오 가게 집 딸이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연출을 배우고 싶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부딪혀 보니 나와 잘 안 맞더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도와주는 건 잘하는데 내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마침 교수님이 방향을 잘 잡아주신 덕에 PD 공부를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나름 의미가 컸던 프로젝트를 꼽는 게 더 어울리겠다. 처음 들어간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볼베어 프로젝트다. 라인 PD를 맡았는데 정말 매력적인 IP였음에도 빛을 보지 못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내게 기회를 준 첫 작품이자 미완으로 남은 작품이라 설렘과 안타까운 마음이 뒤섞여 있다. 또 AI 캐릭터 챗봇 운영 프로젝트는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남는다. 기존 AI 서비스에 캐릭터를 접목시킨 건데 제작 방식이나 파이프라인이 애니메이션과 달랐다.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다시 애니메이션 판에 돌아왔으니 이제는 브나브나가 내 인생의 최애작이 되도록 전력 질주할 생각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버추얼 프로덕션 쪽에서 일할 때였다. 해외 고객사가 ‘이렇게 만들어달라’면서 우리한테 보여준 AR 영상이 내가 만든 것이었을 때 정말 짜릿했다. 내 실력과 감각을 인정받은 것이었으니까. 남은 기간 안에 더 이상 올라가지 않을 것 같은 퀄리티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면 난감하다. 그럴 때면 제작진을 쥐어짜는 느낌이 들어 힘들다. 돈과 시간, 품질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점을 맞춰야 하는 게 PD의 숙명인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뭔가?
좀 더 나은 PD가 되어보려는 욕심이라고나 할까. 함께 일하는 제작진이 고생을 안 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것이 PD의 역량이라고 본다. 작품은 내 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손에서 나온다. PD로서 닮고 싶은 선배가 있다. 팀원을 믿고 맘껏 일할 수 있게 해주면서 이슈가 될 만한 큰일은 앞장서서 정리하는 그런 책임감 있는 멋진 선임이 되고 싶다. 애니메이션계에 되돌아오니 마음이 편하다. 안정감을 느낀다. 내 장점이 가장 빛나는 곳이 이쪽인 것 같다. 서로 투닥거리면서 만드는 과정이 참 재밌다.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다면?
SF나 판타지물을 좋아한다. 진중한 서사가 있거나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보다 귀엽고 가벼운 느낌의 시트콤 장르가 좋다. 브나브나도 일상의 소재를 다룬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MZ세대가 타깃인 만큼 밝고 유쾌한 기운이 가득할 테니 많은 기대 바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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