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은 완성도를 결정짓는 가장 작은 차이
눈, 손, 입 꼬리에는 감정의 결이 숨어 있고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 때로는 감상하는 사람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지만, 제작자에게는 분명한 언어다. 세밀한 손의 모습은 모든 이미지마다 다르고 눈동자의 깊이에 따라 인물의 감정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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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를 사용해 눈두덩을 선택하고 Closed Eyes라는 프롬프트를 통해 감은 눈을 생성했습니다. |
‘피어나 Glitch’의 다음 장면을 위해 다시 variation 기능을 켰다. 아주 조금만 다른 표정, 약간 다른 앵글, 미묘하게 바뀐 채색 톤을 확인하면서 감은 눈의 이미지를 하나씩 비교한다. 이후 AI 편집 툴로 눈두덩을 직접 지정하고 ‘Closed Eyes’라는 프롬프트를 적용해 감정의 결을 덧입힌다. 감은 눈 하나에도 인물의 숨겨진 사연이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한 요소 하나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고심 끝에 선택한 이미지는 다시 업스케일 과정을 거쳐 영상용으로 정제된다. 이는 단순한 사이즈 조정이 아니라 텍스처와 해상도, 감정의 밀도를 고르는 일이다. 마치 무대 위의 배우가 대사를 내뱉기 전 호흡과 시선, 손끝의 떨림을 정리하듯 영상 속 이미지 역시 그 모든 정서를 정밀하게 다듬는다.
작은 손동작 하나, 살짝 내려앉은 입꼬리 하나, 그 모든 섬세한 모습이 장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디지털이지만 아날로그처럼 따뜻하고, 기계적이지만 유기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영상이 된다. ‘피어나 Glitch’가 지닌 감성의 농도는 바로 이‘수정의 고집’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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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딩 사진을 고른 적 있나요? 분명히 내 얼굴인데 왜 이 컷은 맘에 안 들고 저 컷은 자꾸 정이 갈까요? 누군가는“다 똑같이 예쁜데 왜고민해?”라고 하겠지만 당사자에겐 분명 다릅니다. 눈썹 각도, 입꼬리 길이, 손가락 위치 하나로도 운명이 갈리는 선택의 순간이죠. AI 작업도 비슷합니다. 결국 내 마음에 쏙 드는 한 컷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 프롬프트를 바꾸고 수백 장의 이미지 속에서 고르는 과정을 반복하죠. 타인이 보면“뭐가 달라?”하겠지만 작업자에겐 그게 결정적인 감정의 결이니까요.(사진 출처: 마이데몬, 넷플릭스) |
움직임을 입힌 정서, 그리고 음악이 입은 장면들
Luma AI로 ‘피어나 Glitch’의 영상 작업을 본격 시작한다. 정지된 이미지를 움직이게 하는 수준을 넘어 감정이 흐르는 장면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한 번의 생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눈동자의 흔들림, 나비와 꽃잎의 동적인 장면, 입술의 떨림 같은 미묘한 움직임이 장면의 분위기를 좌우하므로 수차례 영상 생성과 프레임 확인, 감정선에 대한 선택을 반복한다.
Luma의 장점은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감과 몰입감 있는 3D 딥러닝 처리 능력이다. 특히 Gen-3 모델로 변환하며 실험한 새로운 감정선은 기존과 달리 마치 꿈의 잔상처럼 흘러가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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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ma로 영상을 생성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
음악은 Udio로 제작했다. 단순히 배경 음악을 덧입히는 게 아니라 장면의 호흡과 감정을 따라 흐르는 맞춤형 사운드와 노래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감미롭고 섬세한’이라는 키워드에 맞게 보컬 선택과 톤의 뉘앙스를 조정했다.
Udio는 간단한 선택 사항만으로도 음악을 생성한다. 원하는 감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음악을 ‘디렉션’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시각과 청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음과 영상의 타이밍을 몇 차례 조정하며 각각의 장면이 음악 위에 포개질 때 그 감정이 배가되도록 조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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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내음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한 곡이 되길 바라며 사랑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가사를 쓰고 Udio로 따뜻한 분위기의 음악을 완성했습니다. 여성 보컬이 이끄는 이 곡에서 선택한 장르를 살펴보면 K-팝 기반의 팝 장르로 컨템퍼러리 R&B와 일렉트로 팝의 부드러운 질감 위에 댄스 팝 특유의 리듬감이 섞여 있습니다.(음악을 잘 몰라서 대강 아는 것들을 선택했습니다.) |
그리고 CapCut에서 편집을 최종 마무리했다. CapCut은 전문 편집 툴 못지않은 기능을 갖췄으면서도 초보자도 다룰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색감 보정, 트랜지션 효과, 영상 속 텍스트의 감성적 배치까지, 별도의 복잡한 플러그인 없이도 시네마틱한 영상미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 레이어를 활용한 감성 자막 삽입, 느린 속도로 슬며시 사라지는 장면 전환 효과 등은 이번 프로젝트의 정서적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어줬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한 ‘피어나 Glitch’는 정통 뮤직비디오라기보다는 감정과 이미지, 음악이 함께 써 내려간 한 편의 시와 같은 에세이 영상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말없이 속삭이고 음악은 그 속삭임에 리듬을 입히며 감정의 곡선을 따라 조용히 흐른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조합이 아닌 툴과 감성, 디렉션의 삼박자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다.
‘피어나 Glitch’를 만들면서 하나의 이미지와 장면,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완성돼 가는지를 소개했다. 이 작은 기록이 창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영감이 되길 바란다. 기술, 특히 AI와 감성이 만나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나가는 지금, 여러분의 작업 역시 더 넓고 깊은 방향으로 확장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김한재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 백서 집필진·저서: 생성형 AI로 웹툰·만화 제작하기(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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