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오브 킹스>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예수의 삶을 흥미롭고도 섬세하게 그려낸 감동적인 서사가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넘어 미국에서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로 등극했다. 장성호 모팩스튜디오 대표는 “이번 흥행은 K-드라마, K-팝에 이어 K-애니메이션이 글로벌 주류 무대에 진출하는 시작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지에서 느낀 관객들의 반응은?
4월에 처음 개봉할 때 무대 인사를 하러 미국에 갔다. 영화가 끝나자 많은 관객이 날 찾아와 “이런 영화를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 “정말 감동적이었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했다. 날 포옹하거나 같이 사진 찍은 분도 많았다. 현지에 있는 지인들이 반응을 실시간으로 전해 주는데 가히 폭발적이다.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
북미 시장에서 종교 영화 중에 이 정도의 스코어를 낸 건 아마 이집트 왕자(1998) 이후 처음일 거다. 영화 평가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관객 평점 97%, 영화 시장조사업체 시네마스코프가 부여하는 등급 중 최고인 A+를 받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소재를 잘 잡았다. 될 만한 기획을 했다. 재미있다고 느낄 만큼 스토리와 영상의 완성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많이 찾아준 것 같다. 그 좋아하는 예수가 나온다 해도 작품이 좋지 않았다면 금방 외면받았을 거다. 글로벌 주류 시장에서 작가로서, 연출자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것이어서 내심 뿌듯하다.
찰스 디킨스의 <예수의 생애>에 주목했던 이유는?
10여년 전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미국 시장만 바라봤다. 처음 나가는 건데 우리가 창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로 승부를 건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금처럼 K-콘텐츠 열풍이 불지 않던 시절에 한국에서 뭘 들고 온다고 하면 누가 쳐다보기나 했겠나. 그래서 현지인의 관점에서 볼 때 먹힐 만한 기획이 필요해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에서 소재를 찾다가 예수의 생애를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독서광이었고 웬만한 고전은 다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정작 이 책의 존재는 몰랐다. 찰스 디킨슨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에게 원고를 읽어 주는 낭독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도덕적 모범 사례로 예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예수를 이해하는 하나의 시선일 순 있어도 그를 제대로 설명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원작을 따라가기보다 찰스 디킨스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해 상상을 더해 가며 얼개를 잡아 나갔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섭외한 비결은?
VFX 일을 오래하면서 할리우드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레 주류 무대에서 활동하는 수준급 제작진들과 친분을 쌓았다. 사실 미국 개봉을 준비하면서 외부인의 도움을 받기보다 내가 일하면서 직접 쌓은 네트워크 안에서 조력을 얻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도와준답시고 돈만 챙긴 뒤 나 몰라라 하는 사례를 수없이 봤으니까. 현지에서는 유명 배우가 최소 2명 정도는 참여해야 작품이 주목받을 수 있다. 그래서 유능한 캐스팅 보이스 디렉터를 찾았는데 마침 제이미 토마슨이 “내 인생에 한 번 쓸 카드를 이번에 쓰겠다”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오스카 아이삭, 피어스 브로스넌, 케네스 브래너, 우마 서먼, 마크 해밀 같은 톱스타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작품 시나리오를 높이 평가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케네스 브래너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작가 출신 배우인데 “내가 써도 이렇게 잘 쓰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런 평가와 입소문이 배우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흥행으로 본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과제는?
연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제작 역량은 이미 충분하다. 할리우드에 가면 메이저 스튜디오 포스트 하우스에 한국인이 많다. 능력이 뛰어나니까 일할 수 있는 거다. 단지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능력을 충분히 갖춘 창의적인 아티스트가 진입할 만한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재능 있는 인력이 애니메이션계에 유입될 기회가 없었다. 기본 토양을 만들고 추수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투자가 이뤄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단순히 작품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인프라, 인력 등 기초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 예전에 영화판에서 ‘사극하면 망한다’, ‘스포츠 영화는 망한다’, ‘좀비물이 될 리가 없다’같은 편견이 있었다. 왕의 남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부산행이 흥행하면서 이런 편견이 다 깨졌다. 작품만 좋다면 장르는 상관 없이 흥행한다.
투자자를 향한 당부가 있다면?
사실 돈은 냉정하다. 투자자의 돈은 소중하다. 받는 입장도 가벼이 생각해선 안 된다. 돈을 벌어 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생기는 거다. 그들은 성공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를 꺼린다. 킹 오브 킹스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기독교 콘텐츠가 실패한 사례가 없다고 아무리 근거 자료를 내밀어도 믿지 않았다. 내게 투자한 분들이 대단한 거다.(웃음) 영국의 비틀스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브리티시 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킹 오브 킹스도 K-드라마, K-팝이 거둔 성과 덕을 톡톡히 봤다. K-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배급사와의 협상 과정이 원활했다. 지금까지 K-애니메이션만 성과가 없었는데 킹 오브 킹스가 그 시작을 알렸다고 생각한다. 처음 진입하는 게 어려운데 그걸 해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 둑이 무너지는 순간은 온다. 그러면 그다음은 쉬워진다.
라이선싱업계의 관심도 높던데 협업 계획이 있나?
현재 많은 제안을 받고 있다. VR 콘텐츠, MD 사업, 뮤지컬,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 제의가 이어지고 있다. 만들 때는 생각도 못 했는데 지금이라도 뒤늦게 해 보려고 부랴부랴 애쓰고 있다.(웃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린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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