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73] 서평원 감독, 깊은 고민을 날카롭고 재미있게 보여줄래요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4-01-29 11:00:54
Interview

▲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


성준은 혼자가 된 이후 마음속에 큰 구멍이 하나 생긴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그의 일상을 지배하던 어느 날, 회사 선배 민석이 성준을 데리고 배드민턴장으로 향한다. 서평원 감독은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을 통해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반어적으로 이야기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 혼자 뭐든 다할 수 있다 한들 정말 사람이 혼자 살 수 있을까요?”



애니메이션에 뛰어든 계기가 있었나?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 덕분인지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많이 그렸다. 만화영화도 자주 보여주셨는데 그중 도라에몽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릴 적 꿈은 화가나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뭔가 더 많이 배우다 보니 꿈이 콘셉트 아티스트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이제는 영화감독으로 바뀌었다.


인상 깊은 작품을 꼽는다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언어의 정원’, 곤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가 있다. 스토리 흡인력이 조금 부족해도 연출이나 작화가 탁월한 작품을 선호하는 것 같다. 영화로는‘위플래쉬’를 꼽는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커리어나 에너지, 작품 스타일을 닮고 싶다. 그만큼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전공으로 영화를 택한 이유는?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들어간 건 애니메이션을 더 잘 만들어보려고 한 측면이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실사영화의 호흡을 알아야 한다. 영화과에서 스토리나 연출 등을 더 폭넓게 배우고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키우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었다. 난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나눠 꼭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의 특성에 따라 매체를 선택하려 한다.


<혼자에 익숙해지는 법>을 통해 말하려 했던 건?

이 작품은 20대 초반에 느끼고 생각했던 걸 시각화한 에세이와 같다. 자신의 능력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게 되자 혼자가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게 개인주의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요즘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타인에게 의지하는 법을 잊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질 순 있지만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 살아갈 순 없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나 사람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본다.

 

▲ 로드킬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움직이는 모든 것을 내가 만들어낼 수 있으니 애니메이션은 내 자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을 그리고 캐릭터를 그릴 때 기분이 좋다. 대상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때 스트레스가 풀리고 희열을 느낀다. 단순히 그린 그림 몇 장이 연속된 동작으로 보이는 그 자체가 재미있다. 이러한 동작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연출하는 과정이 즐겁다. 내 상상력을 실현하는 직관적인 매체가 바로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한다.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는가?

철새를 소재로 한 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가제)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내용은 아직 비밀이다. 내년 영화제에서 상영할 계획이다. 또 학교에서 18분짜리 단편 영화 제작 프로젝트도 진행하려 한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해마다 번갈아가며 만들어보겠다. 영화는 혼자 만들 수 없다. 감독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모두 내가 만들 수 있다. 오로지 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니 욕심나는 소재나 이야기가 있으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림 하나, 빛 하나 모두 내가 좌우할 수 있으니까. 휴학하면서까지‘혼자 익숙해지는 법’을 만든 것도 내 역량을 100%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깊은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을 털어놓는 걸 즐긴다. 고찰해왔던 인간의 내면이나 사회적 현상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싶다. 나이가 들면 세계관이 더 넓어지겠지만 지금으로선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작품 기저에 있을 것이다. 지루한 작품은 피하려 한다. 사람들이 작품을 보며 시계를 힐끔거리는 걸 싫어한다. 그만큼 몰입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스토리의 에너지가 부족하면 연출로 보완해 관객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을 보여주겠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