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한 지 30년이 넘었다. OEM 동화 작업으로 시작해 스토리보드부터 연출까지 웬만한 건 다 해봤다. 오닐코믹스란 회사를 차려 창작 IP를 개발하고 광고나 뉴미디어 영상도 만드는데 주로 하는 건 기획이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사실 그림 그리는 건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내 그림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집에 아버지 친구들이 오시면 그림을 그려드리고 용돈을 받곤 했다. 학교 추천으로 미술학원을 공짜로 다닌 적도 있다. 길창덕 작가님의 꺼벙이를 너무 좋아했다. 미래소년 코난도 깊은 감명을 준 작품이다. 그땐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개념이 없었지만 그림은 곧 내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다. 애니메이션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건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다. 다시 학교를 다닐지 말지 고민하던 중에 당시 OEM 원화를 그리던 사촌 형의 권유로 영웅프로덕션에 들어가 바닥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좋은 감독이 되려면 지금 고생을 많이 해보자는 생각에 허구한 날 회사에서 먹고 잘 만큼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간 참여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한일 합작 TV시리즈 라즈베리 타임즈, 그리스로마 신화, 채채퐁 김치퐁, 요랑아 요랑아, 바람이의 모험, 칠칠단의 비밀, M-3 특공대 등의 연출을 맡았다. 한국에서 방영한 웬만한 일본 TV
시리즈도 내 손을 안 거친 작품이 별로 없을 거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동우에서 만든 유니미니 펫이다. 그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나름 열정을 쏟아붓던 시기였다. 일도 많았지만 공부도 많이 했고 그만큼 보람도 정말 컸다. 나를 더욱 성장시킨 작품이랄까.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엔딩 크레디트에 내 이름이 나올 때 가장 좋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참여했는데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더라. 아무도 몰라주는데 혼자 좋은 거다. 자부심, 자긍심이라고나 할까. 아쉬운 점은 글쎄,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속에 담아놔 봤자 병밖에 더 나겠나.(웃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난 그림으로 성공할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다. 힘들어도 그저 그거 하나 믿고 여지껏 살아왔다. 창작하고 기획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신기한 꿈을 꾸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딘가 적어놓는다. 공상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신난다. 친구들과 얘기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뭔가 익숙한 형태가 아닌 게 느껴지는 대상을 보면 그걸 스케치하기도 한다. 직업병인지, 천성인 건지 모르겠다.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나?
내 작품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애니메이션을 하면서도 내 IP를 갖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다. 반응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질은 둘째치고 자기 생각으로 만든 IP를 보여준다는 게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내년 지원사업에 도전하려고 지금부터 준비 중이다. 쇼트폼, 애니메이션 웹 드라마 등이다. 중학생 이상의 성인들이 볼만한 콘텐츠에 초점을 맞췄다. 짤막하게 기획해 놓은 게 무수히 많다. 이제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릴 때가 됐다. 시간이 없다. 실사 영화에 애니메이션을 접목하는 시도도 늘리겠다. 내년 3월에 영화 역대급 그녀들이 개봉하는데 구모 감독에게 연출 아이디어를 주고 애니메이션 신을 가미했다. 앞으로 영화에서 상상이 들어가는 장면은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도록 하는 게 목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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