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61] 정휘빈 감독, 호러와 비주류가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 보여드릴게요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3-01-20 08:00:22
Interview
정휘빈 감독은 마이너리티(minority, 소수자 집단)에 주목한다. <도나 표류기>의 주인공 도나는 약점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자신을 괴롭힌 주류들에 맞서고 위기를 극복한다. 김 감독은 앞으로도 어딘가 어수룩하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같은 소수자들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생각이다. 주류의 일원이 되고 싶었지만 주위를 맴돌수밖에 없었던 어릴 적 자신을 투영시킨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비주류는 이제 떠올리기 싫은 상흔이 아니라 나만의 컬러를 표현하고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표식이자 상징이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지금까지 15년째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있다. 꽤 오래한 것 같은데 시간과 실력이 비례하지는 않더라.(웃음) 어릴 적 즐겨 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애니메이션의 길을 택했다. 정지된 그림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만든다는 것에 경외심이 들었다. 극장에서 느낀 공간적, 시각적 감흥이 무척 컸던 것 같다.

 

 

 

 

도나 표류기


도나 표류기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뭔가? 작품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면 이렇다. 평소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던 소녀 도나, 그리고 그녀를 괴롭히는 무리가 한 비행기에 타고 수학여행을 떠난다.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는 외딴섬에 추락하고 도나 일행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도나는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산꼭대기의 기지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아이들에게 점차 맞서기 시작한다. 전쟁이나 극한의 상황에서 신체 조건이 불리하거나 가장 약한 종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평소 생각을 확장해 작품을 기획했는데 최약체 종이 고난이나 위기에서 도태되지 않고 끝까지 생존하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먹이사슬 피라미드에 빗대어 가장 밑에 깔린 종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표현했다. 스크린에 올렸을 땐 뿌듯했지만 만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인물들 간의 알력이나 갈등을 좀 더 극적으로 담아내지 못했고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극 중에서 주인공과 괴수의 눈을 클로즈업한 의미는? 도나의 약점은 낮은 시력이었다. 도나의 나약함을 부각시키려고 난시라는 설정을 부여했다. 괴수의 눈은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공격의 수단인데 도나의 난시가 방어 수단이 돼 위기에서 벗어난다. 누군가의 약점이 상대를 제압하는 강점으로 바뀌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는 메시지를 표현했다.


민서와 할아버지는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게서 모티브를 얻었을 뿐 이야기는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낸 것이다.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천방지축인 어린아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소재를 따왔다.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안 좋은 기억만 갖고 있던 민서의 눈앞에 할아버지의 물건이 담긴 상자가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민서는 무섭고 두려웠던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는 게 싫지만 세월이 묻어 있는 할아버지의 물건을 마주하자 그간 잊고 있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2020년 서울산업진흥원 창의인재동반사업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 보는 이들이 잊고 있던 기억 저편의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민서와 할아버지


창문이 없는 집엔 아이가 없다란 작품을 만든 배경이 궁금하다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의 지도로 친구들과 함께 팀을 이뤄 만든 첫 애니메이션이다. 배속에서 엄마와 교감하던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서 마주하는 놀라운 광경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허무맹랑하고 왜곡된 성 의식을 꼬집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보는 이들이 무섭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담은 호러물이다. 돌이켜보면 겉멋이 잔뜩 들고 자의식이 넘쳤던 시기였던 것 같다.(웃음)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거나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요즘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 장르의 SF물이다. 주인공의 내적 성장을 그린 전작들과 달리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해 대중적이면서도 스릴 넘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주겠다. 앞으로는 호러 장르, 소수자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을 통해 나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나가겠다. 사실 도나 표류기는 나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시발점이라 여기고 만든 작품이다. 그 때문에 기획할 때부터 장르를 먼저 선정하고 여기에 이야기를 맞췄다. 비록 완성도는 낮지만 하고 싶었던 장르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표현해볼 수 있었다. 공포물을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정통 호러물을 선호했다면 지금은 웃음이 가미돼 더 큰 공포감을 자아내는 변형 호러물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니 호러 장르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고집하겠다. 호러가 서브컬처인 만큼 최고의 재미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심신이 미약하거나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의 마이너리티 주인공도 꾸준히 나올 것이다. 끊임없이 갈등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호러와 만나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