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유일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 서울인디애니페스트가 올해로 성년이 됐다. 20회를 맞은 영화제의 공식 슬로건은 ‘이영차’ 다. 지원 예산 삭감으로 존폐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도 ‘어떤 위기의 순간이 닥쳐도 모두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눈부시게 멋진 스무 번째 우리의 축제를 만들자’ 란 각오를 표현했다. 숱한 역경에도 명맥을 이어가려는 이들의 열정, 그리고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이미 어제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으리라.
20회를 맞은 소감은?
2회 때부터 이곳에 들어왔으니 19년째 영화제에 관여하고 있다. 20회라고 하니 ‘참 많이 컸구나’ 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영화제만 커진 게 아니라 작품도 질적·양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과는 정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역사가 오래되니 단골처럼 찾아오는 감독도 많다. 오랫동안 꾸준히 단편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고 느낀다. 감독들의 성장도 눈부시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영화제는 앞으로 더 커나가야 한다.
시간의 흐름을 어디에서 체감하는가?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느낄때다. 보통 영화제 개막 전에 경쟁 부문에 오른 감독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 이 자리에서 영화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떤 애니메이션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제는 당시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웃음) 이들에게 옛날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새삼 느낀다. 또 1회 영화제 때 활동했던 감독들이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오는 걸 보면서 영화제의 역사를 실감한다.
예산 삭감으로 올해 개최가 불투명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열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금이 올해 전액 삭감됐고 서울시의 지원금도 줄어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사업에 선정돼 가까스로 운영비를 마련했고 처음으로 후원금도 모아 사업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개인 자격의 후원자가 많이 참여했는데 정말 고맙더라. 사업비가 예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꼭 해야 할 프로그램 위주로 영화제를 꾸렸다. 상영 횟수를 줄이는 대신 2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반영했다.
올해 출품작에서 나타난 특징이나 흐름은?
오랫동안 작업을 이어오는 감독들이 신작을 들고 나왔다. 2005년 1회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정승희 감독을 비롯해 1990년 대부터 활동한 올드보이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점이 새롭다. 올드보이라고해서 작품이 올드한 건 아니다. 20년째 해온 작업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 꾸준히 발전하고 있더라. 이야기 전개와 영상이 세련돼 누가 봐도 인정할만하다. 또 다른 하나는 작품의 분량이 길어졌다는 거다. 최근 몇 년새 러닝타임이 20분 내외인 작품이 늘고 있다. 짧은 단편보다 긴 얘기를 풀어내고 싶은 작가들이 많아졌고 영상 제작 기술도 발전하니 재밌고 짜임새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잘 만드는 감독이라 하면 특정인이나 몇몇을 떠올렸는데 이제는 층이 두꺼워졌다. 전반적으로 작품 퀄리티가 많이 올라갔고 작품, 감독, 관객의 저변도 넓어졌다.
아시아 유일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란 위상을 드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해외에서도 독립 영화제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자국의 작품을 모아 선정하는 영화제는 있어도 아시아를 아울러 작품을 모하는 곳은 서울인디애니페스트 밖에 없다. 독립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독을 만나려면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 와야 한다는 인식은 확실히 자리 잡았다. 이제는 아시아의 작품과 감독을 만나려면 이곳으로 와야한다는 걸 목표로 영화제를 키워보려고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에서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하는게 중요하다. 한국까지 날아와서 작품을 보는데 관객이 없으면 맥 빠지지 않겠나. 그러니 기본에 더욱 충실해야 겠다. 국내에서 영화제를 더 많이 알려 관객을 불러모으고, 아시아 감독을 초청해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 그러려면 예산이 더 필요하다. 올해와 같은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민간 분야의 후원이나 협찬을 적극 유도해볼 생각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영화제를 유지하는 게 모험이자 도전과 같다. 쉬운 적은 단 한 번도없었다. 재정이 불안정하니 영화제 운영이 힘들다. 오랜 전통의 영화제들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지 짐작이간다.
영화제가 지향하는 목표가 있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제가 되면 좋겠다. 다만 초심을 잃지 않는 영화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커지면 갖가지 이유로 애초의 취지가 빛이 바란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사실 영화제를 무작정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더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싶은 마음이커 지니 자연스레 욕심이 나더라. 한국의 수 많은 영화제 중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감독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 있다는 걸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영화제가 되길바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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