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사고로 죽어가던 최 대감은 두억시니에게 소원을 빌어 목숨을 유지한다. 두억시니는 그 대가로 최 대감의 첫째 딸이 열여섯 살 되는 날에 데려가겠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두억시니가 오기로 한 날, 최 대감은 그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도깨비와 얽힌 사건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파헤친 호러물 <두억시니가>는 “사람 마음은 다 그렇다”고 관객에게 속삭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만화를 그린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 성우, 만화, 코스튬플레이가 취미이자 유일한 관심거리였다. 나이가 들고 뒤늦게 세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요즘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 최근에는 목공예를 시작했다. 목공방의 나무 향과 감촉이 마음에 든다. 어설프지만 작품을 만드는 데 재미가 들렸다.
▲<두억시니가> |
<두억시니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두억시니가는 서사가 분명하고 대사가 많아 메시지가 쉽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보신 분이라면 어렵지 않게 주제 의식을 읽어냈을 것이다. 중반부에 최 대감이 우는 장면이 나온다. 성우가 슬프게 표현해야 할지, 또는 차갑게 표현해야 할지 물었는데 슬프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난 최 대감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악인이라기보다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비겁한 선택을 한 것에 가깝다. 그래서 보는 이들도 그들의 속내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두억시니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은 소재인가?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스토리를 짤 때 좋아하는 장르의 영향을 받긴 했다. 기획할 때 아이덴티티, 향수, 파프리카 같은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나도 좀 어둡고 잔인하고 비현실적인 표현이 있는 반전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스토리는 작가의 취향을 반영한 거니까.
▲<어젯밤에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 |
단편 <어젯밤에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 웹툰 <볕내>는 취향에 관한 이야기로 보이는데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여태 선보인 작품에 숨어 있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비밀이 아닐까 한다. 어젯밤에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는 ‘내 마음을 들키면 안 돼’, 볕내는 ‘내 취향을 들키면 안 돼’, 두억시니가는‘나의 비겁함을 들키면 안 돼’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들 작품의 결말은 열린 결말, 해피 엔딩, 새드 엔딩으로 각기 다른데 비밀을 감추려 하면서 생기는 혼란과 갈등을 다루는 게 재밌었다. 모두들 비밀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난 그게 뭔지 궁금하다.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
어릴 적부터 TV 애니메이션에 빠져 살았다. 초등학생 때는 세일러문을 본방 사수하려고 뛰었다. 고등학생 때는 원피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까지 뛰어갔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마구 뛰었던 그때의 설렘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뮤지컬 모차르트에 나오는 노래, 고통스러운 즐거움의 가사로 설명을 대신하자면 ‘나를 흥분시키는 동시에 나를 괴롭히는 이 이상한 감정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내 심장을 뚫는 고통, 나는 희열을 느껴, 이건 고통스러운 즐거움’이라고 하겠다. 많은 창작자가 작업하면서 느끼는 고통과 즐거움에 중독돼 있지 않을까.
▲<마마+마마> |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나?
현재 중편 애니메이션 마마+마마를 제작하고 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 사회적 메시지나 시선 같은 걸 잘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재밌는 이야기, “역시 박혜민답다”는 말이 나오는 연출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작품을 보여줄 테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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