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보게 돼요. 사건 그 자체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작품을 떠나 그저 인간적으로 갖는 호기심이랄까요?”<균열>, <주인>, <하기 힘든 말>은 동일한 모티브로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독특한‘시리즈’다. 안용해 감독의 눈은 사건 속 주변의 행동과 그러한 연유를 좇는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취미여서 그냥 자연스럽게 미대를 선택했던 것 같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는데 먼저 경험한 건 영화였다. 그래서 필모그래피를 보면 독립 영화 같은 실사 작품이 섞여 있다. 애니메이션 연출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제대로 배웠다. 애니메이션을 3개나 만들었지만, 감독이라는 호칭은 여전히 쑥스럽고 좀 낯설다.
▲ 하기 힘든 말 |
<하기 힘든 말>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반에서 따돌림 당하던 고3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그 친구를 챙기던 반장은 죄책감에 시달리던 끝에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힘겹게 꺼낸다. 이 작품에서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당사자만큼은 아니지만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갖는 고통과 피로, 좌절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타적인 사람이 삶을 견디고 버텨나가는 걸 지지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앞서 발표한 균열(2014), 주인(2019)과 모티브가 동일하다. 다만 이 작품은 사건 당사자를 옆에서 도우려는 사람의 이야기다. 비슷한 사건을 두고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 균열 |
그간의 작품 주인공이 청소년인데 이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졸업 작품을 구상하던 때였다. 어느 날 무심코 들었던 한 뉴스가 인상 깊게 남았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트러블이 있던 여고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평소 그 여고생을 챙기던 친구도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거였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영상에 담아내고 싶었다. 다만 실제와 달리 인물이나 이야기는 모두 새로 썼다. 먼저 떠난 친구의 엄마를 중심에 두고 가해자가 등장해 속내를 털어놓는 구도로 균열이란 첫 작품을 완성했다.
친구들과 충돌을 겪고 삶을 마감한 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 게 주인이란 두 번째 작품이다. 세 번째 작품인 하기 힘든 말은 옆에서 그 친구를 챙기던 다른 또래의 이야기다. 모티브는 공유하지만 캐릭터, 이야기, 시 각은 모두 다르다.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남을 챙기고 아픔에 공감한 주변인이다. 인물의 위치는 같은데 이야기가 다른 거다. 사실 내가 아이들이나 청소년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요즘 들어 어른들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을 작품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균열이란 단편으로 이야기를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서 이를 완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확장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앞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다.(웃음)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
진지하게 결심하고 시작한건 아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면서 나도 커서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정도였지 그림 그리는 걸 직업으로, 삶의 목표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어릴 때 쓰던 연습장을 보면 칸칸이 나눠 그린 유치한 만화가 가득하다. 그걸 보면 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이어지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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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별로 즐거운 적은 없었다.(웃음) 돌이켜 보면 기획하고 생각할 때, 이야기를 발전시킬 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표현됐을 때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건 꼭 애니메이션이 아니어도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느끼는 게 아닐까. 그림이 잘 그려졌을 때, 음악이 깔리면서 극 중 감정이 생각 이상으로 잘 살아날 때 힘을 얻는다. 피로가 싹 씻긴다고나 할까. 과정에 들어가 있을 때는 잘 모르고,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감정을 느낀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갈등이다. 이념, 젠더, 빈부 격차, 세대같이 갈등의 갈래가 점차 세분화되고 있는데 갈등이 발생하는 지점을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 또 하나는 이타적인 인간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자 한다. 더 촘촘하게 잘 짜인 구조로 이야기를 밀도 있게 보여주고 싶다.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이야기를 더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대중성이나 상업성을 가미해 어떻게 하면 주제 의식을 흥미롭게 담아낼 수 있을지도 고민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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