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엔진 활용해 저비용 고품질 애니메이션 더 많이 나와야 _ 도파라 _ 정성호 제작실장 · 조성복 게임엔진팀장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2-08-04 08:00:34
Interview

사진 왼쪽부터 조성복 게임엔진팀장, 정성호 제작실장

 

게임엔진(Game Engine)을 3D 애니메이션 제작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게임엔진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기능을 담은 소프트웨어다. 효율성이 곧 경쟁력이 된 애니메이션업계의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도파라가 언리얼 엔진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 화제다. 이전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고 제작과정은 순탄하기만 했을까. 정성호 제작실장과 조성복 게임엔진팀장을 만나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이노파워즈를 TV로 본 소감은?
정성호 사실 좀 무덤덤하다. 회사란 조직의 입장에서 본다면 첫 작품이란 의미가 있겠지만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냈다는 후련함이 더 크다.(웃음)
조성복 언리얼 엔진 제작공정의 총괄 책임자로서 다이노파워즈가 첫 방영됐을 때 조금 창피했다.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업계나 시청자들의 기대치가 있었을 텐데 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결과물이 부족했다는 마음이 컸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픽게임즈의 반응은 어땠나?

정성호 최근 들어 에픽게임즈가 멋진 영상물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만족해하더라. 그래서 자사 소프트웨어로 만든 작품이라는 걸 홍보하기 위해 사무실에 찾아와 영상도 찍어 가기도 했다. 언리얼 엔진으로 러닝타임이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가능했지만 장편이나 TV시리즈물을 완성한 사례는 찾기 드물었기 때문에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언리얼 엔진은 어떤 기능을 갖추고 있나?
조성복 모델링, 리깅(Rigging, 뼈대를 만드는 작업), 라이팅과 렌더링(조명·그림자·색상 요소를 더해 사실적인 3차원 화상을 만드는 것) 등 게임을 만드는 모든 기능이 들어 있는데 상용엔진으로는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언리얼 엔진이 지닌 강점은?
조성복 애니메이션은 시나리오, 콘티 등 사전 제작단계, 모델링, 리깅, 렌더링, 효과, 합성 등 본 제작단계, 편집, 사운드 더빙, 효과음 믹싱 등 후속 제작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각각의 공정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게임엔진을 쓰면 실시간 렌더링이 가능해 작업 속도가 빨라져 제작시간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3분짜리 영상을 렌더링한다면 기존 툴로는 10시간이 걸렸던 작업이 3분이면 끝난다. 또한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제작의 많은 부분을 담당할 수 있어 그만큼 인력이 덜 필요하고 작업 대기시간도 줄일 수 있다. 수정 작업도 수월해 추가 작업 여부를 빨리 판단할 수 있고 후반 공정인 합성, 편집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비도 절감된다. 공정별로 생산된 데이터를 동기화해 통합 관리가 가능하고 특정 데이터가 훼손돼도 빠르게 복구할 수 있다.

 

단점은 없는가?
정성호 기본적으로 게임 개발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기존 애니메이션 제작공정을 대체할 정도로 정교하지는 않다. 머리카락처럼 물리적 연산이 많이 필요한 움직임은 정밀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불러오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고 게임엔진으로 잘 표현되지 않는 부분들은 기존 툴에서 만들어 다시 옮기는 방식으로 만들기도 했다. 결국은 렌더링 결과물들에 대한 퀄리티를 고르게 유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한 세밀한 조정 작업들이 기존의 제작 툴만큼 원활하게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기존 제작공정을 바꾸기 쉽지 않았을 텐데?
조성복 제작 일선에서의 거부감은 상당했다. 수차례 설명에도 이해를 잘 못하는 눈치여서 애를 먹었다. 기존 툴이나 제작방식이 몸에 익은 터라 새로운 툴에 적응하기엔 힘들었을 것이다. 몇 번 사용해보고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원래 사용하던 툴로 돌아가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래서 제작 초기에 무척 막막했는데 차츰 어떤 작업 툴을 쓰느냐를 따지기보다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따져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그때는 언리얼 엔진으로 옮겨진 수백 개의 데이터를 일일이 검증하느라 두 달에 에피소드 한 편씩 만들었는데 이제는 2주에 한 편씩 만들고 있다. 인도네시아 제작팀까지 합류하면 일주일에 한 편씩 나올 정도로 제작 속도가 빠르다.
정성호 다이노파워즈 첫 화와 최근에 만든 후반부 에피소드를 보면 퀄리티에서 조금 차이가 난다. 제작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20년 이상 만들어온 사람들은 이 같은 속도에 많이 놀랐다. 김진철 감독님이 밀어붙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리얼 엔진 제작을 선언하고 시스템을 정착시켰지만 지금도 여전히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제작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가 있는가?
조성복 다이노파워즈를 만들기에 앞서 언리얼 엔진 제작 경험이 전혀 없었을 당시 진주박물관에 영상물을 납품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진주성의 전투 장면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밤을 새가며 만들었다. TV시리즈 제작에 들어가면서도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때의 값진 경험 덕분에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진주성 전투신을 만들면서 제작의 기준점이 설정됐고 그에 맞춰 다이노파워즈를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다.

정성호 기존 제작 툴인 마야에서 언리얼이란 새로운 툴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나곤 하는데 우리가 자신감을 갖는 부분은 이 같은 문제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어떤 부분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확실히 구분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된 점이 다이노파워즈를 제작하면서 얻은 큰 수확이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른 디지털 콘텐츠 제작도 추진하나?
정성호 현재 다이노파워즈 시즌2와 히어로 라이즈맨 등 차기작 제작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과도기를 지나 1∼2년 후에는 AR, VR 게임을 비롯해 뉴미디어와 메타버스에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엔진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은 비용으로 수준 높은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의 생태계가 더 좋아질 수 있기에 다른 제작사들도 게임엔진을 많이 활용해 저변을 넓혀갔으면 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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