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는 하수구 안에 살고 있는 멍청한 쥐와 게 그리고 친구들의 치열한 일상을 그린 쇼트폼 웹 애니메이션이다. 가로가 아닌 세로 영상 안에서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이 펼치는 슬랩스틱 코미디에는 농담을 사랑하는 김성은 감독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 있다. 제20회 서울 인디애니페스트 심사단이 랜선비행상을 수여한 건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유쾌한 여정에 대한 기대감일 테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3D 애니메이션 기획 PD를 맡고 있다. 농담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농담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담을 깊이 탐구하게 됐는데 그 안에는 정말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더라. 그래서 지금은 감정을 어떻게 고조시키는지에 관심이 많다. 이런 농담에 진한 스토리를 결합해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수상 소감이 궁금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딱히 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상이 내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웃음) 다른 분들이 너무 잘해서 내가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떨떨했다. 내 작품을 높이 평가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하수구>를 만들었나?
어디서든 웃긴 생각이 들거나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을 때 깔깔유머집이라는 메모장에 적어둘 정도로 농담을 사랑한다. 그래서 작품을 통해 내가 가진 유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옛날에는 친구가 시험을 보러 갈 때 갑을병정 중에 갑이 돼라고 하면서 갑을 두르고 있는 게 그림을 그려줬다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노트에 게 그림을 잔뜩 그렸던 기억이 있는데, 어느 날 강둑 쪽 하수구에 게가 들어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 그 게가 떠올랐다. 마침 작품을 구상할 때라서 ‘하수구? 게? 그러면 쥐?’하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캐릭터를 만들었다.(웃음)
가로가 아닌 세로 비율에 맞춰 영상을 구성하고 연출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할 때 쇼트폼 영상을 많이 만들어봐서 그런지 가로형보다 세로형이 내겐 더 익숙한 포맷이었다. 하다 보니 세로형이나 가로형이나 연출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
언제라고 딱 잘라 말하긴 힘들다. 되돌아보니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연한 동경에 그쳤다. 그러다 확실하게 내 길을 선택한 순간은 아마 라따뚜이(2007)를 볼 때였을 거다. 프라이팬 그림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때 처음으로 3D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은 실사보다 더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똑같은 창밖 풍경이더라도 애니메이션 안에서는 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실존감과 생동감이 좋다. 한없이 과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단편 애니메이션을 구상하고 있다. 시나리오가 좀처럼 잘 떠오르진 않는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하수구보다 좀 더 스토리와 감정에 집중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나?
문명이 붕괴하는 상황이거나 인류의 종말, 대재앙 같은 이야기를 그린 아포칼립스 장르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작품을 만들면서 생존이라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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