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 PD로 일한 지 올해로 7년 차다. 그동안 리틀베이비 코코, 무지무지 차차차 등의 작품 제작을 맡았다. 현재 꼬마마법사 주니토니를 만들고 있는데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고 하반기에 EBS 방영도 예정돼 있어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있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처음에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으니까. 자연스레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과 긴 여운을 남기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꽤 이른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해서 10대 때부터 눈은 이미 애니메이션계를 향해 있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할지 고민했는데 콘텐츠를 만들려면 사람과 사회,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철학적 사유까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인문계열 학과를 선택했다. 목표를 향한 준비 과정이었던 셈이다. 졸업 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인턴으로 들어가 일했다. 전공자가 아니어서 지식이 없고 용어도 낯설었는데 그토록 바라던 곳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가슴 벅찼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배우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래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이후 감사하게도 정직원이 돼 3년 넘게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조금씩 기반을 다졌다. 비전공자였던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오히려 더 다양한 시각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조율하는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지금까지 맡았던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음악을 중심에 둔 콘텐츠가 많았다. 리틀베이비 코코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율동송 애니메이션이었고 무지무지 차차차도 기존 카카오 캐릭터를 활용해 율동 콘텐츠로 재구성한 작품이었다. 주로 유튜브용 단편 콘텐츠를 만들어왔다면, 현재 제작 중인 꼬마마법사 주니토니는 뮤지컬 형식으로 서사를 확장한 첫 시리즈물이어서 의미가 특별하다. 서사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구조에 중간중간 귀여운 안무를 더하는 작업이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기존 프로젝트에서 쌓은 노하우를 쏟아내면서도 한 단계 더 높이 도전해 보는 작품이어서 애착이 크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뿌듯하다기보다 작업 중에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에서 묘한 활력을 자주 얻는 편이다. 애니메이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캐릭터가 2D 디자인에서 시작해 3D 모델링, 리깅, 애니메이팅까지 한 단계씩 거쳐 정말 살아난 것만 같을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특히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연출을 통해 서사를 만들어내고, 후반 작업으로 예쁘게 다듬어진 최종 비주얼을 볼 때 경이로움을 느끼고 감동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함께 해오고 이끌면서 팀원들과 함께 웃고 울고 하는 모든 순간이 PD로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애니메이션은 창의성이 많이 요구되는 작업인 만큼 제한된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해야 하면서도 퀄리티와 작품성을 계속 높여야 한다. 이런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그에 걸맞은 금전적인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저 아쉽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뭔가?
어릴 때부터 정말 애니메이션과 이야기를 좋아했기에 지금 이 순간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걸 좋아한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고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각자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자 힐링이 된다. 이런 순간들이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 된다.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나?
OTT 시대가 열리면서 극장에 가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극장만이 줄 수 있는 몰입감과 영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전해 보려는 나름의 꿈이 있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서사이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관객 스스로 삶과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며 나도 언젠가 도전해 보고 싶다. 그동안 주로 영·유아용 시리즈물을 만들었는데 어른도 함께 볼 수 있는 동화 같은 극장판 작품을 만들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