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65] 두려워하지 않고 만들래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잖아요, 박예나 감독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3-05-16 08:00:08
Interview
박예나 감독의 작품 츄잉(Chewing)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껌으로 만들어 나눠 씹으며 맛보는 세계에서 자극적인 맛만을 찾던 주인공이 진정한 공감의 소통 방식을 찾는 이야기를 그렸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가벼운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외로운 현대인에게 진정한 공감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려 했던 박 감독. 그녀에게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처음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을 땐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과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다른지 잘 몰랐다. 이제는 내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사랑이라면 애니메이션은 책임감에 가깝다. 창작의 기술을 놓아버릴 순 없다는 마음이 주기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하는 것 같다.

츄잉이란 작품에서 어떤 세태를 꼬집으려 했나?
타인의 상황을 너무 쉽게 이야깃거리로 씹어대는 사회를 표현해보고자 했다. 이런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내게도 나타나는 그런 모습에서 혐오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츄잉은 스스로에 대한 디스 랩과 같다. 츄잉은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제를 성공적인 연출로 연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스토리를 무겁지 않게 풀어내려고 했다. 그래서 아트워크도 전반적으로 밝고 귀여운 느낌의 디자인으로 구성했다.

웹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시리즈는 총 10편으로 이뤄졌는데 이 중 가장 마음에 든 작품 4편을 골라 유튜브에 올려놨다. 네이버 그라폴리오, 밀리의서재, 서울산업진흥원이 함께 주최한 웹애니메이션 공모에 선정돼 만들게 된 작품이다. 선정된 책들 중 한 권을 골라 10편의 시리즈를 만들어야 했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을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던 차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응모했다. 연재라는 시스템을 통해 책임감과 효율적인 제작 방식을 배운 뜻깊은 시간이었다.

원작을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로 정한 이유는?
그땐 외모 강박이라는 주제에 관해 사회적 담론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어가 돼 버렸지만 당시에는 새로 유행하는 신조어 정도로 인식하던 상황이라 나 역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여성의 외모 강박이라는 주제를 들여다보게 됐다. 한 사상을 주장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매우 거친 어투로, 어떤 이는 회유하듯 이야기한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란 책은 문제 상황을 누군가에게 따지기보다 수필처럼 담담히 풀어내는 듯했다. 책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했던 내게는 다소 무겁고 예민한 주제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책으로 느껴졌다.

클렌징, 굿나잇이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두 작품 모두 학창 시절에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클렌징의 경우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클립 영상이다. 화장을 지운 뒤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는 게 두려운 한 인물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앞서 말한 웹애니메이션처럼 외모 강박에 관한 부분을 다루려고 했다. 제작이 중단된 건 맨 얼굴의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하려다 도중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난 사실 움직임 자체보다 내가 추구하는 시각적 분위기를 완성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지를 타협하는 방향으로 가기보다 미완성으로 남겨뒀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굿나잇은 스토리 자체보다 어두운 분위기와 격식 없는 캐릭터 디자인을 섞어 영상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작품이다. 보는 이에게 전하려고 했던 내용은 딱히 없었다.

작품에 담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가 있나?
최근작인 츄잉을 만들면서 든 생각이다.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까지 고민해야만 한 창작자가 작가로 불릴 자격을 얻는 게 아닐까 한다. 물론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내가 그 정도 전달력을 갖춘 감독인지도 항상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작품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오래된 명언에 기대본다.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 또는 만들고 싶은 작품은?
지금은 상업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프로젝트팀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동문 선후배들로 이뤄진 팀이다. 지난 2년간 각박한 마감 속에 살아왔기에 꽁꽁 묶여 있는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제 다시 풀어가야 한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다” 는 말에 누군가로부터 “아이디어는 다들 있지, 만드느냐가 문제지” 라는 답을 들었다. 그 말에 수긍한다. 지금은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선별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업계에서 성실한 일꾼으로, 또 작가로 열심히 일해보려고 한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굿나잇


츄잉

 

클렌징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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