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90] 김정변지 감독, 어른이 되어도 어린 나는 그대로 남아 있어요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5-06-27 08:00:43
Interview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초등학생 하나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며 첫 콩쿠르 무대에 오르지만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도망치고 만다. 선생님은 학예회 무대를 같이 준비해 보자고 제안하고, 망설이는 하나 앞에 어느 할머니가 나타나 말을 건다. <하나 그리고 하나>는 인물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김정변지 감독 특유의 화법으로 어른이 되어도 어린 나는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걸 넌지시 말한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장편 제작 PD와 연출 감독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본업은 연출인데 그걸로만 먹고살기 쉽지 않아서 제작 PD 일도 한다.(웃음) 스무 살 때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수강했다. 그때 만난 연상호 감독님과 인연이 돼 서울역(2016)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낮꿈(2010)이란 작품으로 데뷔한 이후 예술 영화관에서 일하다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연출을 더 공부했다.

 

▲<하나 그리고 하나>


<하나 그리고 하나>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자매의 가족(2014)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미래의 할머니가 된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찾아오는 얘기다. 꿈을 포기한 주인공 하나에게 할머니가 찾아와 용기를 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다.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하나라는 어린아이를 통해 한 사람의 마음 안에 얼마나 큰 우주가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이 이어졌던데?

LA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지로나 국제영화제, 샌디에이고 국제어린이영화제 등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아 신기하긴 했다. 오랫동안 혼자 작업하다 보니 상을 받아도 기쁘다기보다 좀 어리둥절했다.(웃음) 해외에서는 주인공 하나를 어린이가 아닌 예술가로 보고 바이올리니스트를 향한 어느 예술가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인식한 것 같다. 작품에서는 그림자, 괴물 등 여러 모습의 하나가 등장해 주인공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다. 하나의 여러 자아를 펼쳐 놓은 건데 해외에서는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역동이라고 보더라. 심사위원의 평가 중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내면의 갈등을 아이에 빗대어 잘 연출했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가 주인공이지만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란 내 의도를 알아본 거다.

 

▲<자매의 가족>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나?

중학생 시절을 외딴 산골에서 보냈다. 주위에 친구들이 없어서 TV를 보는 시간이 많았다. 당시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아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먼지만큼이라도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옛날 생활기록부를 보니 장래 희망은 줄곧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 느리지만 지금도 계속 그 일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솔직히 많이 괴롭다.(웃음) 프레임 단위로 기록해야 하는 일이라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작품이 나온다. 고된 과정이지만 언제부턴가 작업자들의 장인 정신을 존중하고 존경하게 됐다. 만드는 행위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상존한다. 난 이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다. 작품이 스크린에 걸릴 때, 관객을 만나거나 상을 받는 순간이 기쁠 거라 생각할 텐데 난 작업하고 있을 때가 기쁘다.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가 가장 좋다. 관객이 어떻게 바라볼까, 그들과 어떻게 교감할까 같은 걸 고민하는 게 가장 재밌다.

 

▲<낮꿈>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픽스 미(Fix Me)란 제목의 장편을 하나 만들고 있다. 살인 사건에 휘말린 가출팸 이야기다. 인물의 내면세계를 그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청소년의 내면에 집중한다. 앞으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다. 사람의 인생에 관해 얘기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전하는 메시지는 힘들지만 그래도 삶은 살아 볼 만하다, 그러니 더 나아가 보자는 거다. 근데 또 어떻게 달라질진 모르겠다. 난 현재의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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