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아트토이 캐릭터 <라부부(Labubu)>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K-팝 스타 리사부터 팝의 여왕 리한나까지 셀럽들이 라부부와 함께한 사진을 SNS에 올리며 시작된 열풍은 이제 단순한 인형을 넘어 중국 문화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고 있다.
상반기 팝마트 순익 400% 껑충
라부부는 홍콩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룽 카싱이 만든 더 몬스터즈 시리즈에서 지모모, 모코코, 티코코와 함께 등장하는 요정 캐릭터다. 긴 귀와 부릅뜬 눈, 뾰족한 이, 털로 뒤덮인 몸이 특징인 라부부 디자인은 북유럽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아티스트의 한정판 피규어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 중국의 아트토이 기업 팝마트가 봉제 인형, 블라인드 박스 등 다양한 형태로 대량 생산하면서 인기에 불을 지폈고 라부부와 함께한 셀럽들의 사진과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라부부의 인기는 팝마트의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팝마트는 올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96.5% 급증한 45억 7,000만 위안(약 8,9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 규모도 204.4% 늘어난 138억 8,000만 위안(약 2조 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라부부 등이 이끄는 더 몬스터 시리즈는 전체 매출의 35%를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매출이 257.8% 증가한 28억 5,000만 위안(약 5,550억 원), 미주 지역이 1,000% 넘게 증가한 22억 6,000만 위안(약 4,400억원)을 기록했다.
독특한 디자인·판매 전략에 셀럽·SNS가 인기 견인
라부부 열풍은 독특한 디자인, 이색적인 판매 전략에 셀럽과 SNS 마케팅이 더해진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뾰족한 이빨과 장난기 가득한 표정,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외형이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며 “인형은 무조건 예쁘고 귀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건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새로움과 정형화된 이미지를 거부하는 성향과 일치한다”고 해설했다.
특히 “팬들이 직접 라부부의 의상을 만들거나 장식하는 등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가 쏟아지고 있다”며 “정해진 스토리가 없으므로 소비자들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 다양한 문화권의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MZ세대의 덕질 문화와 맞닿은 블라인드 박스 판매 전략도 주효했다.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반복적으로 구매하게 만드는 랜덤 뽑기는 명품 브랜드 대신 한정판 피규어나 굿즈 등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덕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젊은 소비자들을 제대로 겨냥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블라인드 박스 형태로 판매하는 라부부 인형은 희귀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수집 욕구를 자극하고 중고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현상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블랙핑크 리사, 팝스타 리한나, 전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패션 인플루언서 브라이언 얌바오 등 글로벌 셀럽들의 인증샷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라부부는 장난감을 뛰어넘는 패션 잇템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경제지 포브스는 라부부의 인기가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 점을 주요 성공 요인으로 꼽으면서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라부부를 들고 찍은 사진과 영상이 공유되자 라부부가 힙한 아이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셀럽과 SNS가 라부부를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지위의 상징으로 만든 것이다.
차이나 소프트 파워의 상징
내수 시장을 넘어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라부부는 중국 IP 산업의 세계화를 이끄는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이를 두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넘어 문화 콘텐츠 수출국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라부부가 단순한 장난감을 넘어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IP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과거의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크리에이티드 인 차이나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라부부의 성공을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 확대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영국 BBC는 “예전에는 중국산이라고 하면 품질이 떨어지거나 짝퉁이란 부정적 인식이 강했는데 라부부란 오리지널 IP가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더 이상 어느 나라 제품인지 신경 쓰지 않게 됐다”며 “코로나19 팬데믹과 서방과의 긴장으로 한때 약화했던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라부부의 성공을 통해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미국에서 라부부가 중국산인 걸 모르는 소비자가 많아 반중 정서와 상관없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라부부가 부드럽고 친근한 중국의 이미지를 세계 무대에 보여주는 소프트 파워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제2의 라부부 노리는 <와쿠쿠>
홍콩과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아트토이 시장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라부부가 아트토이 시장의 잠재력을 입증한 만큼 앞으로 더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며 시장이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중국에서는 라부부 인기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 IP로 와쿠쿠(Wakuku)가 급부상하면서 투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라부부 열풍을 통해 본 중국라이선스 IP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선전이치문화회사(Letsvan)가 내놓은 와쿠쿠는 고대 부족의 사냥꾼을 본뜬 캐릭터로 장난기 많은 야생아 분위기를 풍기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라부부와 설정이 비슷한 와쿠쿠는 한정 판매 마케팅,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출시 1년여 만에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와쿠쿠는 라부부의 성공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바이럴 마케팅을 벤치마킹해 셀럽과 팬덤 마케팅을 벌이면서 인지도를 높여 가고 있다. 라부부가 첫 번째 해외 진출 지역을 동남아시아로 선택한 것처럼 와쿠쿠 역시 태국을 중심으로 팬덤을 키우고 있다. 미니소의 글로벌 매장을 활용한 한정판 모델 출시로 희소 가치를 높이고 SNS로 소통하면서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현지화 마케팅을 통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덕분에 태국에서는 와쿠쿠를 라부부보다 더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라부부와 비슷하다는 시선에도 독자적인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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