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전 기업 GE가 중국에 진출하려고 현지 조사를 10년 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에 가려면 일단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해요. 시장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죠. 전시장에서 몇 번 만났다, 술자리 몇 번 하고 친구가 됐다? 그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뿐이에요.” 19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중국을 오갔던 이충남 디코랜드 대표는 완구업계에서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꼽힌다. 중국 시장을 노크하는 우리 콘텐츠 기업에 그가 일러두고 싶은 건 무엇일까.
완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사실 완구 분야에서 일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1988년 선박회사에 들어가 무역 관련 일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회장님이 외국을 자주 나갔는데 디즈니, 헬로키티 같은 캐릭터 MD 사업이 잘되는 걸 보고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부도 난 완구사 한 곳을 인수했다. 그때는 소득이 높아지고 경제가 발전하니 완구산업이 한창 성장하던 때였다. 그래서 나더러 한 1년만 잘 관리해보라고 하시더라. 그러고 나서 한 30년이 흘렀다. 상사맨으로 일하면서 중국의 각 성에 놀러 다니는 게 내 꿈이었는데 말이다.(웃음)
중국에서 사업한 지 얼마나 됐나?
19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무역 업무차 중국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1991년 광저우에서 열린 캔톤페어(Canton Fair·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를 처음 경험한 이후 나카지마 코퍼레이션과 협업하게 되면서 남들보다 일찍 캐릭터 상품화 사업을 시작했다. 1992년부터 한국에서 디즈니 상품을 만들다가 2001년부터 중국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했다. 노동집약적 구조로 이뤄진 경공업 분야는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것으로 보고 1990년대 중반부터 현지에서 파트너사를 물색해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한국 제품을 원하던 이마트가 매장을 늘리면서 내수시장 유통이 빨라졌는데 운 좋게도 일본 산리오와 제휴할 기회를 얻어 사업이 더 활성화될 수 있었다. 2017년에는 24년간 협력해온 파트너사와 광저우에 한중 합자법인(중국광저우기열과기유한공사)을 설립해 상품을 공동·기획·생산·판매하고 있다
현지 시장의 특징은?
중국 시장은 특수하다. 시장 전반에 자본주의 문화가 흐르더라도 체제는 엄연히 사회주의다. 그래서 국가가 문화산업을 주도하고 관리한다. 스토리를 지닌 모든 콘텐츠의 내용이 국민 정서에 영향을 주고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아예 봉쇄하고, 괜찮다 싶은 건 자국화하려고 한다. 콘텐츠 시장을 국가가 제어한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는 게 좋다. 중국 기업들이 상품 판매에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느낀 때가 2010년 즈음이니 IP 비즈니스가 본격화된 지 한 15년 된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소득이 올라가면서 즐길 거리에 대한 수요도 커진 셈인데 지금은 세계의 모든 캐릭터가 중국을 향하고 있다. 세계의 시장으로 떠올랐으니까.
한국 IP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뭘 만들거나 일을 추진하는 속도가 빠르다. 중국은 인구, 자본, 시장의 규모가 크다. 한국의 속도와 중국의 규모가 잘 융합할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 IP는 지속력이 짧다는 게 문제다. 인기가 조금 있다 하더라도 금방 사그라들 것이라는 게 현지 IP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인식이다. 너무 빨리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케팅이 꾸준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IP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MZ세대가 외국 디자인에 익숙하고 이를 선호하고 있다. 우리나라 캐릭터 디자인이 우수하고 창의적이어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지점을 잘 공략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중국 시장에 안착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현지 여러 매장에 상품을 출시했다고 해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규모가 거대한 중국에서는 그저 테스트에 불과할 뿐이다. 산리오가 상하이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낸 이후 인근 주요 도시에 매장 몇 개를 내는 데만도 20년이 걸렸다. 캐릭터나 상품이나 현지화가 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쳇말로 얻어 걸려 유행이 됐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후의 마케팅 전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게 안 돼 금방 곤두박질치는 거다. 캐릭터는 상품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파트너 전략도 매우 중요하다. 규모 있는 현지 파트너와 손잡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중국에서 성공하면 동남아시아 시장도 석권할 수 있다.
중국 진출을 노리는 기업에 한마디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상대를 최소 20번은 만나봐야 한다. 진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우리는 쫓기는 것처럼 너무 서두른다. 이것이 실패의 근원이다. 빨리 가려고 하지 않고 퍼주지도 말아야 한다. 인내력이 필요하다. 사람을 쉽게 바꿔서도 안 된다. 적어도 5년은 있어야 네트워크가 생기고 결과도 낼 수 있다. 신망이 두터운 사람을 길게 보고 지원해야 한다. 한국에서 하는 방식이나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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