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에이지 박정희 대표, 한 줄만 봐도 궁금해지는 작품이면 OK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6-10-13 08:00:55
Interview

콘텐츠 수입 · 배급사에서 지난해 투자사로 사업 영역을 넓힌 더블유에이지가 콘텐츠 기획 ·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미스터로봇>,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를 공동 제작해 해외로 나간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자체 IP 개발·제작·유통이 가능한 종합 스튜디오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박정희 대표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좋은 이야기를 발굴해 K-애니메이션을 세계 시장에 올려놓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투자사로서 거둔 성과를 돌이켜본다면?

<미스터로봇>은 넷플릭스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대만, CIS 지역 등 33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다. 남미 지역 배급도 현재 협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극장 개봉도 준비 중이어서 기대가 크다.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 역시 넷플릭스에 들어갔고 일본, 대만에도 진출했다. 일본에서는 상품화 사업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수익률만 따져 지금까지의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사실 처음 투자를 결정할 때부터 수익을 최우선 목표로 두지 않았다. K-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올 거라 믿고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투자-제작-국내외 배급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종의 학습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실제 작품에 투자하고 해외 시장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어떤 작품이 통하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
 


미흡하거나 갈증을 느낀 부분은 없었나?

배운 게 훨씬 많았다. 투자 포인트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해외 바이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자료나 보고서가 아니라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좀 아쉬웠던 건 해외 시장의 니즈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을 국내에서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찾기 어렵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면 어떨까?' 란 쪽으로 결론이 나왔다.

콘텐츠 기획 · 개발을 직접 추진한다는 건가?

그렇다. 이제는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이야기를 우리가 먼저 기획하고 국내외 투자자와 제작 파트너를 모아 작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현재 작품 몇 편을 준비 중이다. 그중 하나는 해외에서도 성공을 거둔 지상파 드라마를 쓴 작가님과 스토리를 개발해 시나리오를 완성해 놓은 상태다. 국내 정상급 애니메이션 감독님과 함께 작업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개봉 방식과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려고 한다. 보통 국내에서 먼저 개봉하고 해외로 나가는데, 처음부터 해외 개봉과 배급을 진행한 뒤 국내에 들어오는 거다. 사실 국내 시장에서만 제작비를 회수하고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기획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해 만들고, 해외에서 먼저 가치를 입증한 뒤 국내로 들어오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단순히 개봉 순서만 바꾸겠다는 게 아니다. 기획-투자-제작-마케팅-해외 배급 순서 자체를 해외 시장에 맞게 다시 설계하겠다는 거다. 20여 년간 해외 비즈니스를 경험했으므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K-애니메이션만이 살릴 수 있거나 잘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나 정서는 뭘까?

한국의 고전과 전통적인 세계관에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 전통문화에는 귀신과 도깨비, 무당, 저승사자, 이승과 저승의 경계, 한(恨), 인연과 윤회처럼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와 정서가 많다. <파묘>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큐멘터리 <샤먼>이나 최근 넷플릭스에서 소개한 한국적인 세계관의 작품들을 봐도 그렇다. 이런 소재가 해외에서도 흥미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우리는 익숙하지만 해외에서는 처음 접하는 세계다. 특히 이런 판타지 세계관을 실사로 구현하려면 상당한 제작비가 든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상상하는 만큼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 한국적 세계관과 보편적인 감정, 그리고 글로벌 관객이 즐길 만한 장르적 재미가 잘 결합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아직 세계 시장에 제대로 소개하지 않은 한국의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 그 안에서 K-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공동 제작도 계속 이어가는가? 어떤 작품에 구미가 당기나?
물론이다. 좋은 제작사, 좋은 창작자와의 공동 제작 및 투자는 앞으로도 이어갈 생각이다. <미스터로봇>을 함께 만들고 국내외 배급까지 진행한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가 제작 중인 차기작의 국내외 배급을 놓고 현재 협의 중이다. 좋은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시나리오를 덮고 난 뒤에도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남는 이야기, 그리고 해외 바이어에게 한두 문장으로 설명했을 때 곧바로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기획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작품이라면 장편 애니메이션이든 TV시리즈든 형식에 상관없이 적극 검토하겠다. 이미 준비 중인 작품 외에 새로운 기획과 좋은 창작자를 계속 찾고 있다. 스토리가 좋고 한 줄만으로도 궁금해지는 작품이라면 언제든 만나보고 싶으니 편하게 연락하고 제안해 주길 바란다.


향후 포부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16mm 단편영화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후 케이블 방송에서 편성 기획과 콘텐츠 구매 PD로 오랜 경험을 쌓았고, 2009년에는 애니플러스의 개국 멤버가 됐다. 그리고 24년 넘게 글로벌 콘텐츠 비즈니스를 해 왔다. 이제는 그런 경험을 토대로 투자, 기획, 제작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영화 제작 현장, 방송 편성과 구매, 배급과 해외 세일즈, 투자와 기획까지 이 모든 걸 다 경험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그 덕에 해외 시장이 어떤 작품을 원하는지, 그 니즈를 실제 기획과 스토리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좋은 이야기를 발굴하고, 직접 기획하고 투자해 K-애니메이션을 세계 시장에 올려놓고 싶다. 한두 작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이 계속 만들어지고 꾸준히 해외로 나가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다. 반드시 해내겠다. 그 시점도 그리 멀지 않았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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