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의 영화편지]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새벽의 Tango'

칼럼 / 안재훈 칼럼니스트 / 2026-05-06 14:00:29
Review


들어가는 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한다. 문장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추게 된다. 어떤 문장은 내 안의 한 부분을 건드리고, 나도 모르게 정의되어 있었던 감정과 상황을 다시 꺼내 내 삶과 나란히 놓고 메모하게 된다. 독서는 결국 나와 대화하고 나를 다시 정의하는 시간이다.


‘새벽의 Tango’를 보면서도 몇 번이고 마음이 멈추었다. 나는 어른이 된 뒤로 춤을 춘 적이 없다. 무엇이 부끄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몸이 더 이상 따라주지 않았던 것인지 알순 없지만, 몸을 움직이며 땅을 딛고 일어서는 장면은 늘 나에게 환상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어릴 적 일기장에는 분명 ‘춤‘이 있었다는 것을. 불안과 불평으로 가득했던 시절 나는 그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계속 움직이기 위해, 작품 속 ‘주희’ 역시 탱고에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직업 학교든 어떤 공동체든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일은 이상하리만큼 어렵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음에도 나의 행동과 타인의 행동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이 작품의 상황과 설정은 누군가에게는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게 된 사람은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상처를 이미 주고받은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들은 말이 있다. 사람들은 아침드라마의 억지스러운 설정을 비웃으면서도 그 억지를 현실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한다고.


사람은 쉽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궁금해졌다. 내 마음은 얼마나 움직였는지, 그리고 그 마음은 어디를 향해 움직였는지.


이 영화는 ‘지원’이 주인공이지만, 사실 모든 인물이 각자 삶에서 주연으로서 하는 것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원이 새벽에 울고 만 이유를.

 

 

줄거리 소개
친구의 배신은 믿음에 대한 배신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의 선택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상처의 원망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다. 지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벌고,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려 한다. 그 끝에 도착한 곳이 공장이다. 그곳에서 만난 룸메이트 ‘주희’는 밝고 착한 사람이었으나, 그 밝음이 어쩌면 약한 사람이 선택한 하나의 생존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이 오히려 더 당당한 것처럼 지원은 주희와 달리 날 선 거부로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그러던 중 작품 속의 우연들은 지원을 주희에게, 그리고 탱고에 조금씩 가까워지게 만든다. 하지만 함께 춤을 추자는 제안만큼은 지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지원은 자신을 기다리며 손을 내미는 주희의 서툰 스텝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선함이 가진 힘’쪽으로 조금씩 마음을 연다.


마침내 다시 누군가를 믿어보려던 순간, 어린 조장 ‘한별’과 직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말들은 소문이라는 바람을 타고 관계의 온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주희는 항상 문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현관문뿐 아니라 마음의 문 역시 닫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원은 주희가 열어둬야 했던 문을 제대로 잡아 주지 못해 그곳을 떠나며 처음 만났던 ‘새벽’을 향해 걸어간다.

 

 

유심히 본 점 / 좋은 장면
사람들은 정치가 싫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관계 속에서 각자의 ‘정치’를 한다. 차라리 그것을 온전하게 정치로 보며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더 건강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 속의 직장 역시 작은 정치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나는 어느 위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다루고 있는가. 이간질과 뒷말은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에 흔적을 남긴다. 상처를 남긴다.

 

지원은 한별에게 단호히 대응한다. 그러나 자신이 서 있는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 균열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으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금을 더 넓히고 깊게 만들기도 한다. 한별의 정치는 나이를 떠나 결국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 영화에는 ‘발을 밟는 장면’이 등장한다. 춤을 추며 상대의 발을 밟지 않기 위해 애쓰는 주희, 그리고 사람에게서 멀어지려고 일부러 발을 밟아버리는 지원. 이 두 장면은 명확히 대비된다.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계속 상처받는 주희와 배신당하고 인간과의 관계를 끊어내려는 지원. 그 ‘밟힘’은 단순한 동작이 아닌, 인간관계에 대한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의 가치
이 영화는 ‘계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큰 계기인 친구에게 통장을 빌려준 사건부터 작은 계기로는 횡단보도 앞 자전거의 벨 소리까지. 이 모든 순간은 각자의 삶 속에 있었지만 기록되지 못했던‘어떤 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나는 지금 무엇에 둘러싸여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잊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친절한 사람과 명랑한 사람, 그리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희는 말한다. “뒤집어쓰는 게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 문장은 잘못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책임이라는 단어를 자기 방식으로 왜곡해 이용하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어쩌면 한별일지도 모른다.

 

 

추천사
“미안하다”라는 말은 용기가 있어서라기보다 어쩌면 용기가 없어서 나오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 말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새벽의 공기는 어떤 종류의 용기를 만들어내는가. 밤의 용기가 아니라 새벽의 용기. 나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용기, 그리고 복잡해서 외면해 왔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용기. 신뢰를 잃은 뒤에도 또 다른 신뢰를 기대하게 되는 마음, 어쩌면 우리는 그 마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공동체 상영이 많았다. 이 작품 또한 쉽게 맞장구치는 친구나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아닌, 서로를 가장 미세하게 흔들 수 있는 동료와 동지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서로의 발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실수로 밟았을 때는 고개를 숙여 그 발등을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이 도로교통법 때문에 사고 없이 움직인다는 말을 나누는 주희와 지원의 대화처럼 인간의 마음에 도로교통법은 없지만 서로 다치지 않기 위한 마음으로 배려 운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경계, ‘새벽’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인간관계가 주는 고통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유 자체가 이미 하나의 위로다.

 

 

 한때 믿었던 사람에게 깊은 배신을 겪으며, 그 믿음 역시 결국 내가 한 선택이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벽의 Tango>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기로 선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탱고 역시 서로의 움직임을 느끼고 기다리며 함께 호흡해야 완성되는 춤이라는 점에서 관계와 닮아있습니다.

 

부디 <새벽의 Tango>가 수많은 인연 속에 치여 관계에 지쳐 있는 모든 분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고민하는 관계가 있다면, 그럼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효은 감독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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