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만 스튜디오가 영국을 대표하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제작사라면 미국에는 라이카(LAIKA) 스튜디오가 있다. 지난 2009년 첫 장편 애니메이션 코렐라인: 비밀의 문으로 유명세를 얻은 라이카 스튜디오는 유령신부, 파라노만, 박스트롤, 쿠보와 전설의 악기,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 독특한 작품세계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 중인 정희원 씨가 라이카 스튜디오를 소개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라이카 스튜디오가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와 다른 점은 스톱모션 기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이다.
스톱모션은 정지된 상태의 물체를 한 프레임마다 조금씩 옮기면서 촬영한 사진들을 이어 붙여 마치 물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이다. 프랑스의 애니메이터 에밀 콜(Emile Cohl)이 만든 Animated Matches가 최초의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 있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은 월레스와 그로밋을 제작한 아드만 스튜디오가 있는 영국에서 활성화됐다. 실제 이곳에도 영국에서 활동하다 건너오는 작가들이 많다.
스톱모션 영상은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캐릭터를 카메라를 움직여 찍기 때문에 컴퓨터그래픽 영상과 다르다.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머릿속 상상에서 태어난 캐릭터들을 실제로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따라서 라이카 스튜디오는 설립 초기부터 3D 프린팅 기법으로 캐릭터 얼굴을 대량 제작해왔다.
3D 프로그램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모델링하고 스토리보드와 대사에 맞춰 캐릭터 얼굴만 다시 여러 표정으로 변형해 그린다. 그러고 나서 3D 프린터로 얼굴들만 추출한 뒤 애니메이터들이 몸과 얼굴을 함께 바꿔가며 카메라로 촬영한다. 장면마다 필요한 프레임이 모아지면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이어 붙여 영상을 완성한다.
과정 중간마다 필요한 도구와 소품, 배경의 대부분도 실제 모델을 만들어 촬영한다. 여기에 Puppet이라 불리는 캐릭터 인형뿐 아니라 거대한 애니메트로닉스(촬영용 로봇)도 만들어 함께 찍는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란 작품에 나오는 괴물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스튜디오 설립 초기에는 얼굴 조형을 상·하부로 나눠 모델링한 뒤 아티스트가 얼굴 하나하나를 직접 색칠했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의 주인공 코렐라인의 경우 캐릭터 얼굴에 맞춰 1,000개가 넘는 얼굴을 전부 칠해야 했다. 특히 주근깨 위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3D 프린팅 기법이 발달해 20개 이상의 얼굴을 채색된 상태로 동시에 만들 수 있는데 작품마다 1만 개가 넘는 얼굴이 사용된다.
채색을 마친 얼굴들은 리깅이라 불리는 뼈대 심기 과정을 거친다. 리깅 작업을 거친 Puppet들은 이제 사람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다. 팔이나 무릎을 접거나 앉을 수 있고 눈을 깜빡이는 것도 가능하다.
2019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란 작품부터는 Puppet의 상체 부피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 숨 쉴 때 미세하게 움직이는 복부 모습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머리카락의 움직임, 의상의 섬세한 부분, 다양한 사물들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개봉 예정인 와일드 우드에서도 새로운 기법이 등장할 테니 기대해달라.
작품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VFX, 모션캡처 등 3D 그래픽 기술도 활용된다. 스톱모션만의 매력에 3D 그래픽 기술이 접목돼 새로운 영상이 탄생하는 것이다. 실제 모형인 Puppet과 3D 캐릭터들을 한 장면에 담을 때 느껴질 수 있는 이질감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은 조금 더 에둘러 가는 작업 방식 때문에 긴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라이카 스튜디오의 제작진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연출과 실사영화의 생동감이 결합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상상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제작 기간이 길다는 게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특징이다.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 정성이 쌓여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각각의 노력이 모여 하나의 큰 결과물을 완성하는 작업은 무척 아름답다.
언제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수하고 고쳐가며 차근차근 나아간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나아가는 꾸준함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작품들의 주제를 본다면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은 10대 이상의 청소년이나 청년 이상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다. 뛰어난 상상력과 손으로 직접 쌓아 올린 노력, 즐겁고 따스한 이야기가 함께하는 라이카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즐겨 보길 바란다.
아이러브캐릭터 / 정희원 작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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