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풀어보는 캐릭터 저작권] 계약성립과 계약교섭의 부당한 중도파기

칼럼 / 이예희 변호사 / 2023-02-10 08:00:59
Column

사례

애니메이션 제작사 A는 해외 수출용 작품을 만들기로 하고 캐릭터 디자인 작가들에게 시안 제작을 의뢰, 여러 시안 중 우수한 디자인을 선보인 작가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 제작 계약을 체결키로 했다.
A사는 캐릭터 작가 B가 제출한 시안을 선정해 B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양 당사자는 서면 계약을 전제로 용역 내용에 대한 제반 사항을 협의하면서 계약서를 주고받았고 B는 계약이 진행될 것으로 믿고 일부 제작에 착수했다.
그러나 A사는 내부 사정과 경제 여건 등으로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B에게 캐릭터 디자인 제작을 취소하기로 통보한 뒤 다른 작가와 계약을 진행했다. 이럴 때 B는 A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해설

계약 성립 요건
계약은 그 성립에 별도 형식을 요구하지 않고 당사자 간 의사의 합치만 있다면 성립한다. 즉 일방이 상대방에게 일정한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자고 그 청약의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에 승낙의 의사를 표시하면 된다. 따라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구두계약이거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지 않은 경우에도 당사자 간 의사의 합치만 있다면 계약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의사의 합치는 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모든 사항에 관해 요구되는 건 아니나 그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에 관해 구체적으로 존재하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는 있어야 한다.

당사자가 의사의 합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표시한 사항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계약이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
위 사안에서 A사와 B 간 협의 과정에서 캐릭터 디자인 제작에 관한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인 제작비, 제작기간, 납품 방법 및 그에 따른 제반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면 계약서 서명 여부와 무관하게 의사의 합치로 인해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제작비, 제작기간 등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단계라면 계약이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
계약 내용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에 양 당사자의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해도 만일 계약서에 계약의 효력은 양 당사자가 서명 또는 날인한 날로부터 발생한다는 조항이 있다면 서명 전까지 효력을 유보하는 것으로 의사가 합치돼 있으므로 A사는 이를 근거로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계약 성립 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계약이 성립했다고 판단될 경우 B는 A사의 행동이 계약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사표시로 보고 계약을 해제한 뒤 A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채권자는 채무가 이행됐다면 얻었을 이익을 얻지 못해 손해를 입은 것이므로 계약의 이행으로 얻을 이익, 즉 이행이익의 배상을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채권자는 대신에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라고 볼 수 있는 한도에서 청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출비용의 배상은 이행이익의 증명이 곤란한 경우 그 증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인정되는데 이때 채권자가 입은 손해, 즉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5다235766 판결)
따라서 B는 A사에 대해 계약이 이행됐더라면 얻었을 이익의 배상을 구하거나 그 이행이익의 범위 내에서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지출한 제작비용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계약 미성립 시 계약교섭의 부당한 중도파기의 불법행위 구성
만일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경우 B는 A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을까. 보통 계약이 성립하기 전에는 당사자 일방이 교섭을 중도에 파기하더라도 어떠한 법적 책임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해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했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 볼 때 계약자유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그 일방은 상대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위 사례의 경우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더라도 서명 외 계약 내용의 의사 합치가 있었던 점에 미뤄 B는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갖고 A사가 요구하는 대로 캐릭터 디자인 제작을 위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에 A사가 B와 무관한 자신의 내부 사정만으로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하고 다른 작가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 계약자유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그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일방이 신의에 반해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교섭을 파기함으로써 계약체결을 신뢰한 상대방이 입은 상당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서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다고 믿었던 것에 의해 입었던 손해에 한정한다.
따라서 B가 계약이 이행됐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창작비는 결과적으로 이 사건 계약이 정당하게 체결됨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계약교섭이 중도파기돼 계약의 이행을 청구할 수도 없고 또한 그 불이행 책임을 청구할 아무런 법적 지위에 놓여 있지 않은 이상 B는 위와 같은 손해의 배상을 구할 순 없다.
또한 경쟁입찰에 참가하기 위해 지출한 제안서, 견적서 작성 비용 등 계약체결에 관한 확고한 신뢰가 부여되기 이전 상태에서 계약교섭의 당사자가 계약체결이 좌절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출한 비용의 배상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B는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다고 믿음으로써 지출한 제작비 상당액은 청구할 수 있으며 이와 별도로 그 침해행위와 피해법익의 유형에 따라 계약교섭의 파기로 인한 불법행위가 인격적 법익을 침해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초래했다고 인정되는 경우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에 대해 별도로 배상을 구할 수 있다.

 

계약서 작성 및 날인의 필요성
계약 성립 및 효력 여부를 떠나 계약서와 날인은 추후 계약 성립과 그 내용에 관해 다툼이 있을 때 증명을 위해 필요하다. 계약서의 날인도 진정한 것으로 추정하고, 나아가 계약서의 진정도 추정해 작성 명의자를 위조함이 없이 명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법률상의 행위가 그 문서에 의해 이뤄졌음을 증명할 수 있다.
또 계약 당사자는 개별법에서 서면 계약을 의무로 하고 있는지 여부를 유의해야 한다.
위 사례의 경우 특정 애니메이션의 완성을 위해 대가를 받고 제공하는 캐릭터 디자인 제작 노무는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문화예술 용역에 해당한다.
예술인복지법은 문화예술 용역과 관련해 서면 계약을 의무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계약 금액, 계약 기간, 갱신, 변경 및 해지에 관한 사항 등을 명시해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한 계약서를 서로 주고 받아야 한다.
문화예술기획업자 등은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한 문화예술용역 계약서를 3년간 보존해야 한다. 문화예술기획업자가 용역 관련 서면계약을 하지 않거나 계약서를 3년간 보존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구두계약도 내용이 명확하다면 법률상 서면계약과 동일한 효력을 가질 수 있고 계약서의 존재와 날인은 계약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 계약이 성립하지 않아도 계약교섭 과정 중 신의칙상 계약 체결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 경우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분쟁 예방과 대처를 위한다면 계약서를 작성해 날인까지 마쳐 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예희
·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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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브캐릭터 / 이예희 변호사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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