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3년 한 해가 마무리돼가는 길목에 서 있다. 하지만 1년의 마무리일 뿐 웹툰산업이 지나는 시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웹툰산업에 어떤 일이 있었고 성과는 무엇이며 반성해야 할 건 무엇인지, 또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웹툰표준식별체계
2020년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적극 추진했던 게 바로 웹툰표준식별체계였다. 당시에는 국제 표준 도서 번호인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만 존재하고 있던 터라 여러 문제가 예상됐고 부작용도 발생했다.
웹툰표준식별체계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일이 만만치 않았고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많았기에 이를 알리려면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년 쏟아지는 수많은 웹툰이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고 어떻게 유통되는지 알 수 없다는 건 심각한 일이었다. 이 상태로는 개인과 기업 상태에 따라 작품과 정보가 제대로 보존·보호되지 못하고 소멸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웹툰표준식별체계는 지속 성장 가능한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를 만드는 데 가장 우선돼야 할 필수 과제이자 우리나라가 웹툰 종주국으로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국제 표준의 깃발을 꽂는 첫걸음과 같다.
다행히 쉼 없이 목소리를 내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제 정부나 기관을 비롯해 웹툰산업에 속한 이들 중 웹툰표준식별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찾기 어렵고 필요성을 정확히 인지하는 수준의 성과를 일궈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1차 연구 용역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 갈 길이 아직 멀다. 작은 성과에 만족하기보다 지금의 상태가 정체되지 않고 완성된 모습을 갖춰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절실하다.
웹툰산업에서는 저작권 보호는 물론 적절한 보상 체계를 갖추고 불법 복제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확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작품을 보존·보호해 필요한 상황에 적절히 활용하도록 운영·관리하고 웹툰에 관한 모든 정보를 기록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24년에 가장 선결해야 할 목표가 웹툰표준식별체계의 실질적인 진척이길 바란다.
웹툰산업의 공정과 상생
올해는 유독 웹툰산업에 지나치게 규제와 강제가 적용되는 분위기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웹툰산업의 역사가 짧아 긍정적인 평가보다 부족하거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지적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새롭고 혁신적이며 다양한 시도 역시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예술 활동에 대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말이있듯 문화산업을 견인하는 웹툰산업에도 규제와 강제보다 자발적인 정화와 개선 활동을 통한 상생 모델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올바른 가이드가 필요하고 잘못에 대한 꾸중은 필요하나 성장기 아이에게 사고를 강제하고 틀에 맞춘 교정기로 길들이면 안 된다.
표준계약서 개정
표준계약서는 신뢰를 전제로 합리적이고 적절한 약속의 기준을 정하기 위한 중요하고 필요한 장치다. 이는 창작자와 기업, 창작자와 창작자, 기업과 기업 모두에게 해당된다.
표준계약서 개정은 창작자와 기업 간 공정과 상생을 위해서라도 함께 노력해야 할 가치가 있다. 다만 그 취지가 특정 대상을 부정적으로 전제하거나 어느 한쪽으로부터 다른 한쪽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표준계약서는 상호 대상의 의견이 충분하고 균등하게 반영돼 서로 신뢰하고 안심하며 보호될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한다. 또 다양하고 현실적인 계약의 사례들을 충분히 수용하고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AI를 바라보는 시선
AI는 분명 대단한 기술임에 분명하다. 아직도 끊임없이 학습을 통해 성장하고 있어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방식과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웹툰산업에서도 AI는 큰 관심사이자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노동 강도를 줄이거나 크게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학습과 사용에 있어 데이터 불법 수집이나 허용되지 않은 저작권의 사용으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또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저작권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는 점이 있다.
이에 따라 웹툰산업에서 AI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이 역시 단순 논리로 규제와 강제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은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AI에 대해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나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AI가 사용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보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어쩔 수 없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면 안 될 일이다. AI의 부정적 측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과 학습, 제작된 결과물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웹툰산업에 AI가 사용될 때 작품 제작에 대해서만 한정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표절에 대한 검수라든지 불법 복제 유통에 대한 모니터링에 AI를 활용한다면 대안이 나올법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AI를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이전에 철저한 연구와 이해를 통해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그 취지가 긍정적인 이유에서 발생했다는 것에 부정하지 않는다. 그 출발점이 만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와의 저작권 관련 분쟁으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창작자의 권리보호 방안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나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우영 작가의 일에 대해서는 모두가 안타깝고 슬프게 생각할 일이고 반드시 올바르게 해결이 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시는 그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가 시행돼야 하고, 저작권에 대한 권리와 인정, 보호를 위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다만 법안의 항목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정의하고 있는 사항이 불분명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는 불안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우선은 문화산업 유통에 대한 단일법을 만들면 문화상품에 대한 개별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해 웹툰산업에서 필요한 활동이 경직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나아가 법안이 정의하고 있는 금지 행위는 행위의 유형이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예측의 정확성과 가능성이 떨어지고, 법률관계를 판단하는 데 불분명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이어지면 웹툰산업의 성장과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기업의 적극적인 활동과 참여가 중요한 시기에 자칫 제동이 걸려 둔화될까 염려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다양성 장르와 비활성 장르 장려와 활성화가 절실하게 필요함에도 확실하고 안정적이며 어느 정도 검증된 작가와 작품만 선호하는 상황이 될 수 있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의 시도보다 유행에 부합하고 수익성에 의존하는 불균형한 시장 상태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롭게 진입하는 신인 작가, 아직 인지도가 낮은 경우나 대표작이 없는 작가, 작품성의 가치를 중시하거나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는 작가에게 돌아갈 기회가 줄
어든다. 마찬가지로 중소, 약소 기업 역시 웹툰산업의 활동을 포기하거나 다양하거나 창조적인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정형화된 수익 모델에 치중하거나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좋은 취지의 활동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되지만 웹툰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유지를 위해서 신중한 검토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의견 반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으나 올 한 해 웹툰산업을 정리하고 2024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들이 아닐까 한다.
다음에는 웹툰산업을 통해 지역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과제와 목표, 그리고 글로벌 웹툰산업 시대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대응하고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좀 더 먼 곳을 바라보며 지속 선순환을 하기 위해 우리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웹툰산업이 순기능을 위해 필요한 요건과 완성해야 할 성공적인 모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서범강
·(사)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아이나무툰 대표
아이러브캐릭터 / 서범강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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