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97] 이재혁 감독, 답을 찾는 과정의 혼란을 그대로 담았어요

애니메이션 / 장진구 기자 / 2026-01-29 11:00:30
Interview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작품을 좋아해요. 복잡하고 맥락 없는 얘기 속에서 의미와 답을 찾아내려고 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느껴지는 무언의 감정과 그 흐름을 그저 따라가는 게 좋거든요.” 2025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졸업작품 경쟁 부문에 오른 이재혁 감독의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역시 보여주기만 할 뿐 답을 말하지 않는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그대로 담으려고 해요. 결국 답은 없으니까.”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계속 독립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막상 졸업하니 생각보다 시장 환경이 더 안 좋다는 걸 느낀다. 프리 프로덕션을 끝낸 차기작이 하나 있지만 보류해 놓은 상태다. 너무 급하게 준비해서 그런지 하고 싶은 얘기나 소재가 다른 작품과 겹치는 느낌이 들더라. 실력을 더 키울 겸 개인 작업은 잠시 멈추고 요즘은 외주작업을 하고 있다.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는 어떤 이야기인가?

내가 자주 느끼던 공허하고 막막한 감정에 관한 얘기다. 코인노래방이란 공간에서 모니터를 보며 자신이 선망하는 대상과 마주하고, 무언가를 질투하고 무서워하는 주인공의 복합적인 감정을 연출과 움직임에 신경 써서 풀어냈다. 공허하고 막막한 기분은 친구든, TV 속의 스타든, 그 어느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온다는 걸 깨닫고 나서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감,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공허함으로 연결되더라. CCTV는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여러 방을 비춘다. 이렇게 모두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모두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걸 보여준다는 의미로 CCTV란 제목을 붙였다.

 

 

무엇에서 영감받았나?

처음 구상한 소재는 완벽함이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두 달 정도 고민해도 잘 안 풀렸다. 그래서 내가 가장 잘 느끼는 감정이 뭘까 스스로 탐구하다 발견한 게 두려움, 박탈감이었다. 그걸로 소재를 바꾸니 머리가 맑아졌다. 코인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카운터에 앉아 CCTV를 물끄러미 바라본 기억이 떠올랐다. 여러 개의 독립적이고 개인화된 공간이 사람마다 느끼는 다른 감정을 담아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마지막에 주인공이 무릎을 꿇고 앉아 모니터에 뜬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전체 영상 중 유일하게 로우 앵글로 표현했는데 이 장면에 공허하고 막막한 감정을 극대화해 보여주려고 공을 많이 들였다. 가장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감정을 적나라하게 담고 싶어 꽤 고민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인가?

사실 그림을 좀 그려서 전공으로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것일 뿐, 덕후라고 할 만큼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정다희 감독님이 만든 의자 위의 남자란 단편을 보고 나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내가 본 수많은 작품 중에 가장 멋진 작품이었다. 당시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움이란 감정과 가장 잘 맞아서 그랬는지 느낌이 강렬했다. 혼란스러운 걸 혼란스럽게 그저 내버려 두고 받아들이게 하는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작품에 몰두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땐 즐거웠는데 졸업하고 나서 작업을 이어가려고 해보니 돈도 벌어야 하고 해야 할 게 많더라. 가끔 작품에만 올인하는 시간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외주작업을 해보니 창작이 아닌 노동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못 해볼 것 같아서 즐겁게 임한다. 지금은 실력을 더 키우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니까.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구상하다 보면 뭔가 혼란스러운 작품이 자꾸 떠오른다. 혼란스러움이 뭘지 궁금해서, 내가 혼란을 많이 느껴서, 정해진 걸 싫어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SF 요소를 가미한 차기작을 준비 중인데 이 역시 멸망 직전의 지구에서 두 캐릭터가 상상, 기억, 꿈의 혼란스러운 경계를 오가는 얘기다. 꿈같은 얘기를 좋아한다. 꿈속에서는 아무렇지 않은데 깨고 나면 맥락이 없는 그런 것.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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