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01-14 09: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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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감독은 스스로를 멀티미디어 작가라고 소개 하곤 한다. 일상에서 얻는 영감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길거나 짧은 영상으로 완성시키고 애니메이션과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작업을 자유롭게 하고 있어서다. 그 모든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바로 지금 여기, 가만히 있는 순간. 잠시 멈춰서 타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자신의 시선을 돌아볼수 있는 순간.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은 신비한 순간을 만든다.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멀티미디어 작가 이지선이다. 하나의 카테고리에 머무르지 않고 애니메이션, 드로잉, 영상, 사진, 음악 등 다양한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프랑 스로 가서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지금도 프랑스에서 거주 하고 있다. 처음 영상 작업을 접하게 된 것은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할 때였다. 장비도, 기술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럼에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나만의 아주 작은 공간 안에서 작업할 수 있으면서 작품 안에서 모든 걸 표현할 수있기에 매력적이었다. 또 오빠인 이용선 감독이 애니메이 션을 해서 그 영향을 받은 점도 있었을 것이다. 1분 남짓의 짧은 영상을 비롯해 분량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작업하기 때문에 나의 애니메이션 작업과 영상 작업의 경계는 불분명 하다. 그보다는 영화제나 배급사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애니메이션과 영상이 구분되는 편이다.
최근작 <그림자 두 번째 소개>를 소개해달라
<그림자 두 번째 소개>는 그림자가 어떤 존재인지를 소개하는 작품이다.
그림자는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존재이지만,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빛을 받을 때 묵묵히 나타나는 그림자의 모습이 내게는 보기 좋았다. 그림자가 있는 덕분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오히려 거울에 비치는 모습보다 꾸미지 않은 그림자가 더 솔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목이 ‘두 번째 소개’ 인 이유는 이전에 첫 번째 소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 학생 시절 ‘자신의 목소리를 활용하되, 직접 소개하지는 말고 스스로를 소개하라’ 는 과제를 받았을 때 처음으로 그림자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었 다. 그리고 얼마 전, 지금까지 작업해온 영상들 안에 그림 자를 찍은 장면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그림자에 대한 생각이 여전히 많음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이를 다시 정리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영감은 모든 곳에서 온다. 글을 읽다가 우연히 본 구절에 영감을 받아 한참동안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도 있고, 누군가와 이야기 하다가도 영감을 얻는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각종 상황도 영감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영감을 놓치지 않고 표현하기 위해 짧은 영상을 많이 만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내가 어느 분야에서 이름이 나거나 하진 못했기 때문에 때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된다. 열심히 작업 하고 평가를 들으며 내게 맞는 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그림자 두 번째 소개>는 추상적인 소재를 공감 가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다. 추구하는 스토리텔 링법이 따로 있는지?
내가 만드는 작품들은 스토리의 기승 전결이 확실하거나 클라이맥스가 명확한 스타일은 아니다.
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흘러가게 하는 편이다. 물론 스토리텔링을 계속 공부하며 이야기에 참신한 반전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상 속에서 문이 열리면 관객들은 누군가 문으로 들어갈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열린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다면 관객이 기대하던 흐름을 끊는 것이고, 여기에서 작은 반전이 느껴질 수 있다. 또 여기서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마음은 들어간다는 뉘앙스를 준다면, 반전과 흐름이 함께하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의 흐름이 일직선으로 흘러가기보다 이리저리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보는 이들이 놓쳤던 것을 다시 생각하고, 끊김을 만났기 때문에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는 등 다양한 리듬을 주고 싶다. 사실 이렇게 설명하긴 했지만 잘 안 되는 부분이다.(웃음) 갈 길이 멀다.
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가 눈에 띈다. 음악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통 영상 작업을 모두 마치고 나서 음악 작업을 시작한다. 영상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떠오 르는 대로 만든다. 어느 정도 장면과 음악을 맞추긴 하지만 일일이 싱크를 맞추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에 깔리는 멜로디나 박자감이 작품 끝까지 동일하게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엔 장면에 싱크를 맞추는 방식도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음악 작업은 컴퓨터로 한다. 타국의 좁은 작업실에서 영상부터 음악까지 모두 작업해야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컴퓨터로 하게 됐다. 현실적인 제한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컴퓨터만 있으면 대부분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애니메이션의 장점인 것 같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일단 내가 그림, 사진, 애니메이션, 음악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관객들에게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전시를 통해서 도, 영상과 영화를 통해서도, 더 나아가 일상 곳곳에서도 보여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는 순간’ 들을 마련해주고 싶다. 내 작업물을 보면서 잠시 발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세상을 저렇게 보는구나. 그러면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내가 그런 순간들을 계속해서 살아온것 같다. 빠르게 변화하고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치일 때에 잠시 가만히 있는 순간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과 비교하면 작업 환경이 어떻게 다른가?
완성한 작품을 영화제에 출품하고 관객을 만나는 것은 동일하다. 배급사의 역할도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배급사는 작품을 내면 거의 대부분 받아주는 편인데, 프랑스의 단편 애니메이션 배급사는 배급사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배급사와 색깔이 맞지 않는 작품이라고 판단하면 다른 배급사를 추천해주는 경우도 있다. 또 나는 주로 짧은 영상을 작업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영상은 개인전 등 전시에서 보여주지 않는한 상영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그에 비해 프랑스는 예술영상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는 영화제가 있어서 좀 더많이 출품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삶의 많은 부분이 예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삶에 꼭 필요한 한 부분으로서 예술에 투자하곤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좀 더 많은 기회를 만날 수 있는 듯하다.
향후 작품 계획 또는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 해를 위해, 대외적으로 어떤 행사가 있으니 꼭 준비하자고 하는 건 아니다. 그저 평소처럼 꾸준히 작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일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더라. 2021년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하고 싶기 때문에 다양하게 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사회적 이슈라든지 환경문제라든지, 좀 더 세상과 깊이 연관된 것들 말이다. 이전까지 나는 내면적이고 추상적이며 개인 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로 벌어진 사회 전반의 모습들을 보면서 이렇게 힘든 시기에 별이나 그림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라고 말한다면그 누가 이야기를 들어줄 것인지, 들어준다 해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많이 알아가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기 위해 계속 작업할 것이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1.1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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