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09-09 17:28:17
사물이나 캐릭터 탄생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고민하고 사회현상이나 여러 사건을 피규어의 관점으로 정의해 그에 어울리는 입체 조형물이나 서사적 영상을 선보인 돈선필 작가의 개인전 ‘포트레이트 피스트(Portrait Fist)’ 가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9월 13일까지 열린다.
텅 빈 캐라의 얼굴은 사물에 가까워
이번 개인전은 오늘날 얼굴의 이미지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소비하는지, 어떻게 사물화하면서 다른 대상을 견인하는지를 피규어의 상태로 탐구하며 얼굴이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인물, 배우의 초상, 가상의 캐릭터 등 일상에서 여러 얼굴을 마주하는 우리는 얼굴에서 낯익은 정도, 개인의 신분, 국적, 심지어 정치적 입장이나 삶의 여정과 운명을 판단한다. 이처럼 얼굴의 이미지, 혹은 ‘얼굴’ 이라 부르는 이미지는 신체의 일부 그 이상으로 항상 무언가를 대신한다.
대체로 얼굴은 그것과 연결된 한 사람 혹은 실체를 증명한다. 그러나 얼굴로 인식되지만 실제 얼굴과는 거리가 먼 이질적인 상태의 얼굴도 있다. 바로 ‘캐라’ 의 얼굴이다.
전시는 ‘캐라’ 의 개념을 포함한다. 캐라는 캐릭터의 일본식 독음에서 파생한 단어다. 사람의 성격이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본식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극단적으로 기호화된 얼굴 이미지를 통해 인격체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는 보통 독특한 머리 모양과 색, 일상에서 보기 힘든 의복이나 말투로 표현되는데 이런 주변의 부수적인 특징이 각각의 인물을 구분하게 만든다. 즉, 캐라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지만 얼굴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텅 비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만화 속 캐릭터를 보며 얼굴을 인식하는데, 캐라의 얼굴은 특정한 얼굴을 사진처럼 재현해내는 대신 사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레진과 폴리우레탄폼, 아크릴 등의 재료로 이뤄진 조형물에는 눈, 코, 입 대신 게임기, 오토바이, 음식, 만화 캐릭터 등의 피규어가 붙어 있다.
결국 마주하는 건 리얼리티의 모방뿐
레트로 붐과 더불어 과거의 콘텐츠들은 새롭게 작업돼 고해상도의 이미지로 재탄생하고 있다. 타고난 배우처럼 연기하고 저해상도로 뭉개져 있던 캐릭터의 얼굴은 이제 모공과 솜털까지 생생하게 표현된다.
캐라 역시 섬세하게 흩날리는 머리카락, 눈동자와 동공, 뼈와 근육들까지 고해상도 시대에 맞게 리얼리티를 갖는다.
점점 발전하는 기술과 해상력으로 오늘날의 초상은 더욱 다듬어져가고 사람들은 언제나 합리적인 얼굴들만 마주한다. 이처럼 현실을 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작가는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극도로 섬세하게 재현한 현실, 리얼리티의 모방뿐이라고 말한다.
24개의 조형물과 영상설치로 구성된 이번 개인전은 여러 상태의 얼굴, 혹은 얼굴이 되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며 추상적 대상을 구체적인 상태로 제시하는 피규어의 특징을 재정립하게 될 것이다.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9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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