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전하는 명확한 이야기_독립영화관 (28) _ 전진규 감독

Interview

| 2020-04-16 14: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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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애니메이션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은 짧다. 그 안에서 전진규 감독은 보다 명확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보자마자 결론을 예감할 수 있는, 그렇듯 명확하기 때문에 과정이 더욱 소중해지는 이야기. 말없이 영상만으로 전달되는 그만의 메시지. <죽음의 상인>에서 명징한 상징과 영상을 통해 여운이 남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전진규 감독을 만났다





먼저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단편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레이션을 하고 있는 전진규다. 현재는 도쿄예술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생 시절, 교과서 책장의 끄트머리에 연결되는 그림을 하나씩 그려서 좌르륵 넘기면 마치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낙서를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플립북 애니메이션이었다.

농구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는데, 당시 농구에 푹 빠져 있었던 덕분이었는지 생생한 느낌을 잘 잡아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그림을 좋아하니까 미술로 진로를 잡았고, 한동안은 석고 소묘 등 일반적인 입시미술을 공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낙서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더라. 그 뒤로 만화 일러스트로 다시 진로를 잡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운 후 자연스럽게 업으로 삼게 됐다.


최근 작인 <죽음의 상인>에 대해 소개해달라

한 소년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파는 상인은 아픈 병아리가 생기면 던져버릴 뿐이다.

그런 상인을 소년은 죽음을 파는 존재, 즉 사신으로 바라본 다. 소년은 사신으로부터 병아리를 구해주고 싶지만 결국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것뿐임을 알게 된다. <죽음의 상인>은 오래전 그렸던 한 장의 일러스트에서 시작됐다. 박스에 담긴 병아리를 팔고 있는 죽음의 상인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을 그린 것이었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소년이 처음으로 접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로 표현하고자 했다.






<죽음의 상인>은 상징성과 표현성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누구나 살아가며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건과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대표적으로 죽음이 그렇다. 인간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 <죽음의 상인>에서 소년은 그런 존재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소년은 병아리 보다는 큰 존재이지만 죽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존재다. 이처럼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접하고 느끼게 되는 세상의 거대한 크기,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무게 같은 것을 <죽음의 상인>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사람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감지할 때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한 다고 생각한다. 소년 역시 병아리의 죽음을 몸으로 먼저 감지했고, 그래서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소년이 어렴풋이 감지했을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잠깐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해 몇 프레임 정도로 짧게 튀도록 표현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상징적인 것이 너무 많아 오히려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았나 싶어서 제작자로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모든 작품이 넌버벌인데, 넌버벌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

단편 애니메이션은 장면을 중요시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상으로 상황을 보여주고 그를 통해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건 내가 영화적인 대사를 잘 쓰는 편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단편 작품에 대사가 잘못 들어가면 설명적인 장면이 만들어져버릴 수도 있으니까.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긴 하지만, 내 생각을 설명하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한편으로 시각적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업 하면서 이 캐릭터가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 하는 부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모로 나는 넌버벌이 더 좋다.


작품을 만들 때 감독님만의 연출법이나 화법이 있다면 무엇인지?

명확한 시나리오를 쓰려고 노력한다. 작품의 발단 부분을 보면 누구나 흐름과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있길 바라며 작업해왔다. 그래서 은 스토리는 간단하되 주인공 소녀가 변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주고 싶었고, <죽음의 상인>은 기승전결이 또렷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단편이라는 장르에서는 엄청난 반전이 아니면 반전이 오히려 이야기를 뻔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시각적인 부분들에 집중해 심플 하고 명확한 영상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죽음의 상인>은 지난해 많은 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됐다.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자그레브 애니메 이션 페스티벌을 가장 좋아한다. 첫 작품인 을 최초로 초청해준 영화제이기도 하고.(웃음) 해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참가하면 아무래도 다양한 나라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 좋다. 해외 작품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기반하고 트렌드도 다르니까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한편으로 <죽음의 상인>을 상영할 때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병아리 상인을 본 적 없는 타국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동일한 경험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또 비슷한 경험이 없는 국가권의 관객들은 자신보다 작은 존재를 지킬 수 없어서 무력감을 느꼈던 경험 등에 비추어 공감하기도 하더라.








<죽음의 상인>


국내 애니 시장이나 지원사업에 대한 생각은?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제작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일단 전문가들의 실력은 물이 오른 상태인데, 이 실력이 적재적소에 활용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픽사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레이아웃 전문가는 레이아웃만 하고, 연출가는 연출만 할 수 있는 시스 템이 정착돼 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은 이처럼 전문화되지 못한 상황이라 한 가지만 깊이 있게 잘한다고 해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는 모르겠지 만, 시스템을 갖추어나간다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단편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마이너한 문화에 속해 있다. 그러나 충분히 가치 있는 영역인 만큼 앞으로 발전해나갔으면 좋겠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다

오래전 요양원에서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당시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돌봤는데, 그때 만난 어느 모녀에게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다. 반드시 말로만 상대방에게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행동, 사소한 스킨십 하나가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고 진정한 용서의 순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음 이야기는 그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했고, 일하는 동안 작품에 대한 갈망이 커져서 대학원에 진학해 현재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이 떠올랐다. 첫 작품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많았기에 그 아쉬움을 지우기 위해서 앞으로 두 작품만 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취업을 할 계획이다. 아쉽지 않느냐고? 별로. 왜냐하면 나는 반드시 ‘지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으니, 언젠가 또 비자발적 백수가 되는 때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때 하면 된다. 그때 또다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다. 사실 조금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웃음) 좋지 않은가, 백수가 되더라도 할 일이 있으니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작가가 가진 가장 좋은점 아닐까.



전진규 감독


· 2015


· 2018


·<죽음의 상인> 2019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4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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