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10-15 14:02:31
김리하(본명 김도형) 감독의 데뷔작인 마스코트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노량진 고시촌을 무대로 리얼리티를 확보한 마스코트는 2019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인디애니페스트 2019 등 국내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항상 눈 을 뜨고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시인의 자세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임하고 있는 김리하 감독을 만나 마스코트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추구하는 작가의식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우연히 피너츠라는 작품을 봤는데 찰리 브라운이라는 캐릭터가 인상깊었다. 찰리 브라운의 유럽여행이란 작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봤다. 사실 유년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원형 탈모로 인한 괴로움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동그란 얼굴에 대머리 같은 외모를 지닌 찰리 브라운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걱정을 달고 사는 찰리 브라운과 잘나지 못한 그의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점이 많았다. 불안과 자신감 결핍, 비관적이면서도 낙관적인 태도 등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었고, 1학년 여름방학 때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대전중구문화원에 가서 ‘메모리즈’, ‘바다가 들린다’, ‘공각기동대’등의 작품을 보면서 애니메이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마스코트’를 소개하면?
마스코트는 주인공 여우가 지자체의 마스코트(Mascot)가 되기 위해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부하고, 시험 보고, 아르바이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략히 정리하면 특별히 잘난 것 없는 공시생 여우의 공무원 도전기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웃음) 우리 주변에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친구 혹은 후배, 선배를 떠올려보면 마스코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들 대부분은 넉넉하지 못한 배경과 환경 속에서 밤낮 없는 경쟁을 통해 무언가가 되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마스코트라는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시대상을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스코트’를 연출하게 된 계기와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작품을 기획할 때의 마음가짐이 생각난다.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일상에서 주제를 찾아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때마침 노량진 육교가 철거된다는 뉴스를 접했고 그 상징성에 주목했다. 시간적 배경은 2015년, 여기에 노량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시생들의 이야기를 담으면 나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코트에는 철거 전의 노량진 육교와 그 주변 건물의 모습이 여러 차례 나온다. 작품 속 주인공인 여우는 이 시대의 청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이를 통해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단 현실을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성형수술을 통해 인기 많은 개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은 여우를 보고 있노라면, 치열한 취업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될 것이다.
‘마스코트’가 2019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경쟁 부문에 진출했는데?
지인을 통해 마스코트가 경쟁부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는 사람으로 이 같은 소식을 들으면 소리부터 질러야 하는데 기쁨보다 작품의 부족한 점이 먼저 떠올랐다. 마스코트를 제작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3년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 했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마스코트는 주인공을 조용히 바라보는 입장으로 연출했다. 사회적 약자를 다루다 보니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 주인공 여우의 행동 하나하나도 오버액션이 되지 않도록 절제했다. 외국에서는 한국 청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고, 우울한 반응을 보이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평가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마스코트의 스토리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실제 겪고 있는 삶이며 일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회자되고,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 마스코트에는 상황을 설명으로 풀어나가지 않고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다양한 배경 컷이 나오는데, 이러한 노력이 좋은 평가를 이끌어낸 것 같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통해 해외 작품들의 넓은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틀에 갇혀서는 안 되겠다고 각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옆에서 항상 응원해주었던 곽기혁 선배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작품을 연출할 때 특별히 관심을 두는 것이 있다면?
담담하게 풀어낼 것, 멋 부리지 말 것, 현실을 왜곡 없이 담아낼 것. 이 세 가지는 마스코트를 만들며 항상 떠올렸던 나와의 다짐들이다. 마스코트를 완성했을 당시의 러닝타임은 15분 정도였다. 과한 부분을 삭제하고 부족한 부분을 수정해 6분 분량의 이야기로 다듬었다. 나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게 하는 신파극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을 보면 주인공 여우는 숨죽이며 하울링을 한다. 절제를 통해 주인공의 슬픔을 극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기보단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의 영상을 만들고 싶다.
향후 계획과 작품에 담고 싶은 주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애니메이션에 입문한 이래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보면 겁 없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들었을 당시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기쁨이 컸다. 그런데 작품을 완성하고 나니 시작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은 사라지고 자괴감 가득한 내 자신과 마주하게 됐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작가적인 부분 모두에서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독립 애니메이션은 혼자서 거의 다 만들다 보니 힘든 때가 많다. 처음의 마음가짐이 흔들리고, 자신과의 약속에서 질 때가 많다. 대학 시절 은사이셨던 이창동 감독님께서는 “다른 작품을 흉내 내지 말고 삶이나 현실을 흉내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그래서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소재를 찾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김리하 감독
ㆍ <마스코트> 2015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19.10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 아이러브캐릭터.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