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3-08-23 14:00:28
오지혜 감독은 협업을 즐긴다. 불완전한 여럿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작품을 탄생시켰을 때 맛보는 감격과 성취감에 취해 또다시 새로운 작품을 위한 긴 여정을 준비한다. “카툰네트워크의 <스티븐 유니버스>란 작품을 좋아해요.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아요. 서로 만나 배우고 성장하죠. 조금 부족해도 서로 힘을 합쳐 보완해나가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어릴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공감하는 대목이에요.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게임이나 만화도 좋아했지만 애니메이션을 가장 좋아했다. 그림과 이야기가 접목돼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게 재미있었다. 2018년 반달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5년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아이코닉스에 조기 취업해 현재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앙코르
앙코르란 작품을 소개해달라
2021년 선보인 단편 앙코르는 지금껏 살아온 세상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묻는 작품이다. 마을 사람들과 떠들썩한 파티를 즐긴 후 술에 취해 잠든 주인공 나초는 잠에서 깨어나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초는 텅 빈 마을이 주는 위화감과 마주하고 이 기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 나서지만 지금껏 알던 세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점점 커진다. 그러다 지금 사는 곳이 현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걸 깨닫고 진실을 찾아 나선다. 영화 트루먼쇼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만들어진 거라면 우리는 여기에 안주할 지,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지를 보는 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주인공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지막 신에 관객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며 앙코르를 외치는 모습을 담았다.
반달
반달이란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대학생일 때 폴란드를 자주 왕래하던 한 교수님이 폴란드 크라쿠프 얀 마테이코(Jan Mateiko)대학 종합예술과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탄생하게 된 내 첫 작품이다. 폴란드 학생 2명, 한국 학생 2명이 한 팀을 이뤄 6개월간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동요 반달의 가사를 참고해 여행을 떠나는 토끼를 그렸다. 이 작품의 특징은 4명의 감독이 각자의 색깔이 드러나는 애니메이션 영상 4개를 릴레이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난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화 같은 느낌보다 좀 더 역동적이고 강렬한 느낌의 토끼를 내세워 2D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실사 영화에서는 할 수 없는 우스꽝스럽거나 과장되고 다양한 모습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다. 앙코르란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허공에서 굴러떨어지고 녹아내리는 장면을 실사 영상으로는 보여주긴 어렵다. 몽환적이거나 추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게 자유롭고 무궁무진하다. 기획할 때도 즐겁다. 스토리를 짜고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콘셉트 아트를 만들 때 항상 설렌다. 애니메이팅처럼 반복 작업이 이어질 땐 힘들기도 하지만 완성하고 나면 매번 감회가 새롭다.
노력한 작품이 완성본으로 나와 상영될 때, 다른 이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그 기분 때문에 또다시 다음 작품을 기획하게 되는 것 같다. 팀을 이뤄 작업하는 방식도 매력적이다. 애니메이션은 종합예술이다. 서로 잘하는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 작품을 만들었을 때 희열을 느낀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 또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앞으로도 꾸준히 단편작을 만들고 싶다. 직장인이다 보니 개인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지만 기획은 늘 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하는 창의인재동반사업에 헬퍼(helper)로도 틈틈이 참여해 지인들의 작품 제작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동화 같은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사서가 사라진 도서관에서 훌쩍 커버린 어린왕자가 다른 책의 주인공을 도우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책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몽환적이면서도 스릴이 가미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따스하면서도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결합된 형태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어두운 숲에서 무언가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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