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2-10-14 08:00:25
애니메이션에서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만들 때는 힘들고 지치기 일쑤다.(웃음) 만들고 나면 고민이 많아지고,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또 만들게 되더라. 그림과 소리를 이용해 생각을 시각화한 게 애니메이션이다. 재현하려던 생각을 실체화한 작품을 스크린에서 볼 때 쾌감을 느낀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드는 이유다.
애니메이션 표현을 위해 20세기 초 근대미술 이론과 표현법에 주목한 이유는?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기성 예술을 부정한 혁신적인 예술운동인 아방가르드가 새로운 미술사조로 등장했는데 당시의 회화, 디자인, 이론을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출신의 화가로 추상회화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이론 중에 회화의 모든 요소는 움직이고 운동한다는 내용에 주목해 대학생 때 실험적인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때 ‘이게 애니메이션이구나’ 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처음으로 파트 블루(Part Blue)란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추상회화를 선호했기에 아방가르드가 유행할 당시의 표현법으로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어보고 싶었다.
주요 작품들에 담고자 했던 생각들은? QQQ(2012)에서는 Q라는 생명체가 모여 합쳐지고 분리되면서 전체를 형성해가고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개인과 집단 간의 상호 역학관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창조적 진화(2019)는 프랑스의 회화작가 로베르 들로네의 작품 블레리오에의 찬가와 베르크손 저서 창조적 진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들로네의 회화 표현 발전 과정을 따라가면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성장하고 변화를 반복하면서 생명성을 확장시키는데, 들로네와 당시의 예술가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며 새로운 예술 표현을 개척한 점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우리들의2(2021)는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서거 7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이다. 신생이란 시에서 시작해 신곡의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이어지는 단테와 연인 베아트리체의 재회 스토리를 재해석해 코로나19나 사회적 갈등으로 야기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QQQ(2012)
창조적 진화(2019)
해외 영화제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영화제에 출품해 평가를 받는 게 어색했는데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창조적 진화를 처음 선보인 후 해외 영화제에 적극 도전해 호주, 캐나다 등지에서 상영할 기회를 얻었다. 다만 코로나19로 여러 영화제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열리면서 관객들이나 바이어, 평론가들의 직접적인 반응을 살피긴 어려웠다. 우리들의2는 지난 6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비주얼과 사운드 분야에서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고 표현기법도 신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월에 열린 스위스 판토체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도 공개됐는데 일반 관객들의 반응을 직접 느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문화권이 다른 사람들이 잘 봤다고 말해줄 때 신기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더라. 앞으로 할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그레브영화제
판토체영화제
그간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자신만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내가 “이렇다” 라고 말하긴 섣부른 것 같다. 그것은 내가 규정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것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다만 고전의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을 고집하려고 한다. 지금의 이야기가 고전에 담겨 있고 지금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리스본 국제독립영화제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유명한 캐나다의 노만 로제란 작곡가의 노래 다섯 곡을 활용해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내년 3월 리스본에서 공개할 예정인데 생의 기쁨, 삶의 기쁨(Joy Of Life, 가제)이란 이름의 댄스 애니메이션이다.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영감에 따라 등장인물들과 영상의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에 도전해볼 생각은? 지금까지 해왔던 건 단편에 부합된 주제와 표현들이었다. 앞으로는 원작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다만 어떤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리들의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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