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한병아 회장, 젊은 감독들이 뛰놀 곳 든든히 지킬게요

Interview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4-04-05 08:00:17

 

삶과 인생의 의미를 조명하는 가슴 따뜻한 작품으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한병아 감독이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를 이끌 새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 신임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부담이 크지만 이럴 때일수록 회원들이 더 끈끈하고 단단하게 뭉치게 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취임 소감이 궁금하다

어깨가 무겁다. 그래도 이런 막중한 자리를 영예롭게 받아들인다. 동시대에 활동하는 이들을 대표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젊은 세대가 이끄는 게 낫지 않을까 했는데 사실 이 자리가 무척 고단한 자리여서 다들 선뜻 나서기 힘들어하는 눈치더라.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모두를 보듬고 뒤치다꺼리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회장직을 기꺼이 맡았다.(웃음)


협회 출범 21년째를 맞았다. 그간 이룬 대표적 성과를 꼽는다면?

2005년부터 영화제(인디애니페스트)를 열었고 2010년부터는 배급 사업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신인 감독을 배출하고 우리 작품을 해외에 소개했다. 작품 퀄리티가 꾸준히 높아져 이제는 해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거나 수상하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쇼트필름 부문이 강세인데 해외에서도 작품 퀄리티를 보고 놀라워한다. 협회가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위상을 높였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문화 행정 분야와 관련 산업군에 독립애니메이션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부처나 기관의 예산 관련 회의에 들어가면 “대체 독립애니메이션이 뭐냐,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뭐냐”란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다른 데도 아니고 가장 밀접한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곳에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당장 그 의미를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단편 제작 지원 사업은 아마 2000년쯤 서울경제진흥원이 처음 시행한 걸로 기억한다. 많은 관심과 노력으로 그 명맥이 이어져 지금의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업이 존재한다. 독립애니메이션이 꾸준히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기관의 역할이 컸다. 그 덕에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드는 전진규 감독, 한지원 감독 같은 신예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독립애니메이션은 그간 없던 스타일, 없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면서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진화시키는 양분과 같다. 이런 의미와 가치를 더 알리고 인식을 높여나가겠다.
 

예산이 전액 삭감된 영화제를 유지하는 것도 급선무다. 공모 사업에 지원하고 후원금이라도 모아 어떻게 해서든 열 생각인데 정부 협조를 최대한 끌어내는 쪽으로 설득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영화제 중 애니메이션 타이틀을 건 영화제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인디애니페스트 밖에 없다. 인디애니페스트는 단 한 번의 갈등이나 부침 없이 뒷걸음질하지 않고 차근차근 여기까지 왔다. 팬도 늘었다. 개막식과 폐막식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객석이 꽉 찬다. 내후년에는 출품 부문을 넓혀 세계 영화제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런 알토란 같은 영화제가 날벼락을 맞아 휘청이는 게 정말 가슴 아프고 속상하다.
 

 

회원들에게 제시할 방향은 뭔가?

스스로 우리의 가치를 깨닫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 독립애니메이션이 지닌 가치와 의미에 공감하고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 우리끼리 잘 뭉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고 이끌겠다. 회원이 한 200명쯤 된다.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젊은 작가의 유입도 늘고 있다. 재정적으로는 항상 허덕이지만 분위기는 정말 좋다. 역량 있는 젊은 감독을 중심으로 에너지가 모이고 활기가 돈다. 협회가 이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재정 확충을 위한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이곳은 절대 고독한 예술가들의 모임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성공하는 크리에이터가 많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기업과 협업할 일이 있으면 적극 협력하겠다.

 


이루고자 하는 포부가 있나?

우리가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애니메이션 지원 예산이 한 해 260억 정도인데 독립애니메이션은 10억에 그친다. 예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게 일도 아닌 걸 보니 협회가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고 누군가가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우리를 의지하고 있는 후배들이 있으니 더욱 단단하게 뭉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더 능력 있고 창의적인 신인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그라운드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이 협회의 역할이자 내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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