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04-08 08:00:28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의 흥행세가 심상찮다. <사랑의 하츄핑>의 기세를 이어받아 <극장판 뽀로로: 바닷속 대모험>, <퇴마록>이 4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업계 안팍의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반기에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의 개봉을 준비 중인 강재규 플레이칸 이사는 “한 해에 국산 풀타임 장편 애니메이션이 4편 이상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애니메이션계에도 영화판을 잘 아는 전문가가 많아져야 흥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극장판 장편물 개봉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영화를 전공한 건 아닌데 어릴 때부터 영화에 푹 빠져 살았다. 꼭 봐야 할 세계 영화 100선 정도는 줄줄 꿰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전함 포템킨, 백야를 접하고 나서 러시아 유학을 결심했다.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곳이어서 견문을 넓히고 나만의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한국에 돌아와 영화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수급사, 배급사, 제작사를 거치고 영화제와 마켓을 수없이 돌아다니면서 많은 걸 배우고 경험했다.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 유통에 주목한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와 외화를 포함해 110여 편을 극장에 걸었다. 일이 손에 익다 보니 또 다른 동기부여를 찾고 있던 차에 애니메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콘텐츠의 본래 목적인 꿈을 담을 수 있는 게 바로 애니메이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소외된 장르인 것 같아서 2019년쯤부터 극장판 배급을 시작했다. 사실 국산 장편물의 기획력이나 기술력, 작화 방식 등은 이미 미국, 일본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제작해오다 보니 뛰어난 인재도 많다. 문제는 극장판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지만 정작 빛을 못 보고 있다는 거다. 애니메이션계의 생각과 방식이 영화계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극장판 유통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는다면?
일단 배급 방법에 대한 제작사의 이해가 부족하다. 상영 매체에 작품을 넘겨주고 마케팅만 잘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큰 오산이다. 영화계가 단순히 잘 만든 작품 하나로 승부를 보는 곳처럼 보일 텐데 실상은 다르다. 벽이 높다. 배급사는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면서 제작사와 꾸준히 밀접한 관계를 갖길 원한다. 어렵게 만든 작품 하나로 거래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리란 뜻이다. 어렵사리 잘 만들어놓고도 방법을 모르고 경험이 부족하니 흥행이 될 리가 있나. 이런 걸 이해하고, 기획부터 제작 완료까지의 일정을 관리하고 최적의 개봉 시기를 조율하는 전문가가 이쪽 분야에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작품을 만들어온 것에 대한 자신감만 믿고 접근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흥행에 성공해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라인업을 구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영화판이 돌아가는 구조와 생리를 잘 아는 전문가 또는 그런 회사와 협업하는 것이 좋다. 현재 극장판 제작 환경을 들여다보면 제작이 다 끝나고 스크리너라도 봐야 배급사와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영화처럼 아예 기획 단계부터 배급사를 끼고 제작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투자를 받을 확률도 높아진다. 유통 루트가 뚫려 있으니까. 그리고 제작사, 수급사, 배급사가 흥행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면밀히 계획을 짜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가니 작품 수준이 떨어지고 제작도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영화 제작 프로세스를 현실적으로 따라갈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흥행이 검증되지 않은 장르라서 소외된 것 아닌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장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더러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기대치도 커지고 있다. 퇴마록을 비롯해 미스터 로봇,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 연의 일기 등 올해는 개봉하는 작품이 유독 많다. 그래서 올해가 정말 중요한 해다. 이럴 때 의미 있는 결과를 내 극장판 제작·유통 환경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포부는 뭔가?
코로나19 이후 한국 영화는 타격이 좀 있었는데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활기찬 분위기다. 주 소비층인 10∼30대가 다른 매체를 찾아 떠난 반면 애니메이션은 가족과 같이 즐기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로 개봉을 미뤘던 수많은 한국 영화가 창고에서 묵히고 있지만 애니메이션은 시의성을 크게 타지 않아 주목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대가 바뀌면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10∼20대의 인식도 변해 몇몇 작품이 흥행하면서 극장을 떠났던 10∼30대가 돌아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재패니메이션을 제외하고 그간 유치해서 멀리했던 극장판을 어떤 계기로 보게 되면서 니즈가 생기고 폭도 넓어진 상황이다. 여전히 수입작이 대부분이고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지원책이 더욱 강화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면 상황은 생각보다 빠르게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를 위해 내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겠다. 내 역할은 제작사, 배급사, 수급사를 잇는 다리이자 흥행으로 갈 방향키를 잡아줄 조타수와 같다. 극장판을 준비하는 곳이라면 그간의 노하우를 나누면서 적극 돕겠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바란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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