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66] 작품으로 하고 싶은 얘기 전하는 게 즐거워요, 김현주 감독

Interview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3-06-29 08:00:32

 

베개아기, 우산과 미꾸라지, 아빠가 나만 했을 때, 미나리꽝 아이들, 하얀물개, 달빛궁궐.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주인공은 현주리 한 명이다. 현주리는 어릴 적 모습을 닮은 김현주 감독의 자전적 캐릭터다. 캐릭터의 세계관이 곧 자신의 일상이자 삶이다. 2003년 베개아기에서 유치원생이었던 현주리는 2016년 달빛궁궐에서 열세 살 초등학생으로 자랐다. 2023년 현주리는 대학생이 됐을까, 아니면 피터팬처럼 네버랜드에 남아 있을까.

 

하얀물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스튜디오 홀호리란 이름을 내걸고 작품을 만든 게 2003년이니 올해로 20년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경영학을 배웠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좋아하는 걸 찾아 교내에서 여러 일을 했다. 당시 전공과 상관 없이 음악이나 만화로 세상을 표현하는 친구들을 만난 게 동기부여가 돼 나도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는 창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어느 교수님이 일러스트를 그려보라고 권하길래 시각디자인을 배웠고 나중에 영화제를 오가다 보니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져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간 이후 본격적으로 만들게 됐다.

 

달빛궁궐

 

그간 만든 작품을 소개해달라
연작으로 베개아기(2003), 우산과 미꾸라지(2004), 햐안물개(2006)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토대로 실험하고 싶었던 걸 작품으로 만들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혼자 꾸역꾸역 만들었다. 동화풍의 화면을 유연하게 움직이게 하고 싶었는데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후반 작업을 할 때 남편(서석준 대표)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베개아기, 우산과 미꾸라지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시카고 국제아동영화제, 뉴욕 국제아동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이런 성과가 TV시리즈 하얀물개 제작 투자로 이어졌다. 이들작품에는 현주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어린 시절의 나를 캐릭터화했다. 워낙 엉뚱한 짓을 많이 해서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는데 그중 세 가지를 골라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장편 달빛궁궐(2016), 단편 마이 차일드(2022)가 있다. 달빛궁궐은 개봉하기까지 10년 정도 걸린 것 같다. 현주리의 체험학교 시리즈 1권-궁궐에서 온 초대장이 작품의 토대였다.

 

마이 차일드

 

취재를 꼼꼼히 하는 걸로 알려졌던데
내가 존경하는 모든 작가의 작품은 실재에 기반을 뒀다. 취재를 충분히 한 뒤 작품에 얼마큼 넣을지를 고민할 순 있지만 취재 없이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로케이션 취재는 당연하다. 창작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세곡동에 나가 풀, 도랑, 애들 노는 모습, 초등학교 벤치 등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첫 단편을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장소를 취재하기도 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룰 땐 전문가를 심층 인터뷰한다. 댕벤져스 아카데미도 그런 경우다. 달빛궁궐을 만들 때도 박물관 학예사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꼼꼼히 고증했다. 상업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창덕궁에 관한 이야기라서 고증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이 어떻게 시각적인 판타지를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또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주인공인 초음이의 풀잎학교(2010)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이주 노동자나 불법 체류자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 안산, 농촌 등지를 돌아다녔다.

 

댕댕정보통


애착이 가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을 꼽는다면?
TV시리즈인 하얀물개(2007)다. 당시에는 독립 작가와 외주 제작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기보다 ‘알아서 잘 만들어줄게’라는 분위기가 강했다고나 할까. 서로 소통이 잘 안되면 작품이 산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외주 제작사에 배경작화팀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 한곳을 차지한 뒤 제작진과 동고동락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때 보였던 열정과 성의에 제작진도 마음을 열고 내 의견을 존중해준 덕에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지금도 그때처럼 몰입해서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앞으로는 이를 넘어서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애니메이션에서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내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재미다.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이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마이 차일드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걸 그린 단편인데 내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담았다. 영화제 같은 곳에 초청되면 작품을 소개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할 수 있는 게 좋다. 다만 이야기 구조를 명확히 짜야 하고 관객과 투자사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야 하는 장편과 달리 단편은 모티브만 있으면 만들기 편하다.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

 

스무 살 현주리가 등장하는 작품도 나오는가?
현주리란 페르소나를 통해 삶의 가치관을 얘기하며 사회가 더 나아지길 바랐는데 하고 싶은 작품의 주제가 현주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라면 가능하겠다. 하얀물개 시리즈나 현주리 단편 시리즈의 속편이 나온다면 그럴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현주리가 등장할 일은 없을 거다. 요즘엔 차기작으로 댕벤져스 아카데미의 스핀오프작을 기획하고 있다. 구조견 학교에 오기 전 농장에 사는 개였던 마롱코기의 가족 이야기다. 중편 분량으로 하려다 단편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찾고 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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