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4-03-27 08:00:20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뮤지션 방주인은 어느 날 화장실에서 바퀴벌레와 마주한다. 기겁하며 에프킬라를 난사하는 그녀 앞에 월세를 던져준 바퀴벌레는 순간 훈남으로 변해 느닷없이“월세를 반 내줄 테니 동거하자”고 제안한다. 천적과 3초만 눈이 마주쳐도 바퀴벌레로 돌아오는 성곤, 그리고 바퀴벌레만 보면 기절초풍하는 그녀는 함께 살 수 있을까. 기발한 상상력으로 극혐이 극호로 변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웹 애니메이션 <나의 홈퀴벌레>는 시나리오 기획력이 탁월한 이수아 감독의 재능이 번뜩이는 작품이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학창 시절 작가가 되겠다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에 이것저것 적어놓곤 했다. 그때부터 이야기 만드는 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는데 러닝타임 동안 잘 편집한 그림이 관객을 사로잡는 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여 애니메이션을 전공으로 택했다. 그런데 수강 신청하는 게 워낙 힘들어서 원하는 강의 대신 기획이나 이야기 쓰는 수업을 많이 들었다.(웃음) 졸업 작품을 만들 땐 다른 친구들은 영상을 만들거나 애니메이팅을 하던데 난 시나리오 쓰는 것밖에 몰라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졸업 후 정부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 제작과 편집 관련 기술을 배운덕에 첫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작년 서울인디애니페스트에서 랜선비행상을 받은 소감은?
랜선비행상은 심사위원의 평가와 영상 조회 수, 댓글 같은 관객 반응을 반영해 선정한다. 첫 작품을 보여줄 좋은 기회여서 주위 사람들에게 엄청 홍보했더니 부담도 커지더라. 폐막식 날 내심 기대했던 관객상을 놓쳐 아쉬웠는데 곧바로 랜선비행상 수상작으로 호명되니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수상 소감을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며 무대에 올랐는데 막상 상을 받으니 눈물만 나오더라.(웃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상까지 받으니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응원 받은 기분이었다.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다는 확실한 동기, 그리고 이게 내 길이란 확신을 얻었다.
<나의 홈퀴벌레>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실제 겪은 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러 기획안을 놓고 고민할 때 멘티가 클리셰를 활용해 가볍게 접근해보라길래 눈물이 사람으로 변하는 장면을 떠올린 날이었다. 새벽 2시에 물 마시러 부엌에 나왔더니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걸 봤다. 그 집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보는 거라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 광경이 너무 강렬해서 며칠간 잊히지 않았는데 문득 ‘바퀴벌레가 사람으로 변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멘티에게 말했더니 그 자리에서 OK 결정이 났다. 작품을 만들려고 바퀴벌레의 습성이나 특징을 조사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정말 괴로웠다. 공교롭게도 집에서 바퀴벌레가 세 번 정도 더 출현했다.(웃음) 작품을 만들기 전에는 그림 그리기보다 글 쓰는 게 익숙했지만 끝냈을 땐 재미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용기를 얻고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얻는 즐거움은 뭔가?
나의 홈퀴벌레를 끝내고 나서 생각하니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주는 재미가 있더라.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드는 게 좋았다. 실제 바퀴벌레가 사람으로 변하진 않겠지만 주인공 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은 분명 있을 테다. 내가 만든 등장인물이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떠올리면 즐겁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공감하며 즐거움을 얻어가는 게 기쁘다. 이야기를 쓰는 건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그림도 하나의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을 덜 느끼게 됐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게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나의 홈퀴벌레처럼 옴니버스 형식의 웹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판타지 요소를 섞어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혼자 만들어야 하니 내년에나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의 홈퀴벌레 세계관을 넓혀나가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사람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나의 홈퀴벌레에도 황당함과 재미 속에 메시지가 숨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무명 가수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바퀴벌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처럼 앞으로도 비주류의 이야기, 소외받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다루겠다. 살다 보면 내가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내가 맞게 살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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