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12-17 08:00:49
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2018년에 PD 직함을 달았다. 요즘은 시광대리인 시즌3, 천관사복 단편, 게임 홍보 영상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주로 제작 PD를 맡았는데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여러 가지를 공부했다. 기획과 제작 전반을 아우르는 팀장이 된 건 최근이다. 호기심이 많다. ‘왜 그렇게 됐을까’늘 궁금해 하고 본질을 탐구하려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인지 작은 문제에서도 개선점을 찾으려 한다. 또 그 과정을 즐긴다. 불편함을 외면하기보다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움직이는 편이다.
원래 애니메이션 PD를 꿈꿨나?
불어불문학과를 다녔다. 그림을 그려보기는커녕 이쪽에 들어올 생각도 없었다. 다만 어릴 때부터 SF물을 그렇게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창작가를 꿈꿨는데 언젠가 스타워즈, 매트릭스, 공각기동대, 스타크래프트 같은 미래 공상과학 세계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학교를 나와 온갖 일을 해봤지만 그 꿈은 여전했다. 그럼 SF물을 만들려면 어느 길을 가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2D 애니메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창의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접근해볼 만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채용공고를 뒤지다가 2014년에 디알무비에 들어가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아무것도 몰라서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을 때마다 욕먹기 일쑤였다. 밤낮없이 하다 보니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나둘 배워가는 재미로 버텼다. 10년이 훌쩍 지나 이제는 내가 그때의 선배 자리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지금까지 주로 2D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여러 고객사와 단편부터 시리즈물, 광고, PV 영상 등을 만들었다. 게임아트 소스도 제작하고 최근에는 웹툰도 기획했다. 그중 최애작을 꼽으라면 단연 연의 편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N, 스튜디오리코와 2년 반 정도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20분짜리 12편으로 이뤄진 시리즈는 보통 1년이면 끝나는데 극장판은 긴 호흡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더라. 연의 편지를 만들면서 애니메이션 한 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과 열정이 들어가는지 새삼 느꼈다. 그러한 과정을 견뎌낸 선배, 동료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말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연의 편지 시사회가 열린 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 기획을 시작한 건 코로나19 유행 이전이었는데 팬데믹이 지나고 나니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많은 영화가 개봉을 미루거나 OTT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과연 이 작품을 스크린에 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지금 돌아보더라도 투자사, 제작진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어려웠을 거다. 시사회 때 스크린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코끝이 찡했다. 기쁨과 후련함, 그리고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날의 공기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뭔가?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작품 스케일이나 흥행 성적보다 중요한 건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런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제보다 나은 PD가 되기 위해서다. PD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사람이다. 작품의 재미와 표현의 의도를 가장 먼저 이해하려고 늘 노력한다. 기획할 때는 이야기가 지닌 본질적 재미를 고민하고, 제작할 때는 각 파트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조율하고 개선하는 데 신경 쓴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길잡이가 되고 싶다. 필요한 역량을 채워가며 목적지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랄까. 내년에도 다양한 작품을 만들 텐데 팀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 있게 완성해낼 수 있길 기대한다.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다면?
내 꿈의 끝에는 언제나 SF가 있다. 상상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장르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인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다루기에도 좋은 무대라고 믿는다. 청춘이라는 주제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 공상과학 스토리가 있는데 청춘과 SF를 결합한 이야기로 사람들 마음에 오래 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 꿈을 품고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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