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5-02-14 08:00:24
애니메이션 <알사탕>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예비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백희나 작가가 쓴 그림책 <알사탕>과 <나는 개다>를 엮어 만든 21분짜리 3D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최대 애니메이션 제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이 제작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제작을 이끈 와시오 다카시 총괄 프로듀서는 “한국 원작의 파워와 일본의 기술력이 결합해 해외가 주목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큰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먼저 제안했다던데?
2019년쯤 한국 출판사에서 ‘이런 작품이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라’며 알사탕 그림책을 소개했다. 일본어 번역본을 받았는데 읽고 깜짝 놀랐다. 스토리가 환상적이었다. 클레이를 활용한 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표현력이 정말 풍부했다. 이야기 속 판타지가 실제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에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 곧바로 출판사 측에 애니메이션 제작을 제안했다. 작가님께 직접 의사를 전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하셨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가?
책을 보고 나서 어떻게 해서든 이것을 꼭 영상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실 단편작으로 수익을 낸다는 건 어려운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회사를 어떻게 설득할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결국 이걸로 돈을 벌기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협업을 제안할 것이란 논리로 경영진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정도로 원작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점토 인형의 질감을 3D로 구현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작 팀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3D 영상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클레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제대로 살려야 원작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분량이 짧은 단편이라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진 않았지만, 작품을 완성해 영화제에 출품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일반에 언제 공개할 텐가?
지금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웃음)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일단 지금은 영화제 수상을 목표로 홍보에 전념하고 있다. 곧바로 비즈니스로 연결하기는 어려워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 공개할지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인기 웹툰 <고수>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던데?
작년에 네이버웹툰의 자회사 스튜디오N, 스튜디오미르와 함께 고수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로 약속했다. 이 작품은 2D로 제작 중이다. 무협물인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려면 극화(사실적으로 묘사한 만화)처럼 선이 두꺼운 작화가 어울릴 것 같아 2D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웹툰에서는 그림의 선이 가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선을 더 굵게 써야 하니 이미지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원작의 화풍을 유지하면서 영상으로 얼마나 화려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만드는 중이다.
한국 스튜디오와의 공동 제작으로 기대하는 효과는?
2∼3년 전부터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K-팝이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인기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쉽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 웹툰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함께 만든다면 세계에서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함께 한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고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애니메이션 알사탕이 지금까지 6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원작이 가진 힘과 우리가 가진 표현력을 결합하면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앞으로의 결과를 자신할 수 있는 이유다.
한국 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일본과 문화는 다르지만 비슷한 감각을 갖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드는 감정이나 기분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같이 일을 해보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다. 또 서로에게 배우는 것도 많다. 콘텐츠 역시 비슷한 데가 많다고 여긴다. 그래서 같이 만들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오고, 동아시아에서 만든 작품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더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웹툰에서 보듯 이야기나 소재의 힘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좀 더 자신 있게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으면 좋겠다. K-팝, K-드라마처럼 세계에서 인정받는 첫 작품이 나온다면 길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하지만 세계는 애니메이션을 어른을 위한 작품으로 인식한 지 오래다.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으면 한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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