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 2023-09-05 08:00:58
창작 애니메이션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경제진흥원(이하 SBA)의 애니메이션 지원금 삭감 조치에 이어 이번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 폐지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양하고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창작을 위한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K-콘텐츠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지원책 마련에 요란했던 정부가 정작 애니메이션은 홀대하고 동네북 취급하는 행태에 애니메이션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 폐지 위기
업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을 수립하면서 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 6월 영진위의 자체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애니메이션 기획 개발 및 제작지원사업의 경우 영진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이 중복 지원하고 있어 행정력 낭비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양 기관에 각각 신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다”라며 사업 지속 여부의 재검토를 예고했다.
영진위는 올해 중편 제작 지원, 장편 초기 개발 제작 지원, 본편(장편) 제작 지원으로 나눠 30여억 원을 편성, 제작자가 작품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이 제도는 업계와 오랜 시간 여러 논의를 거쳐 확립한 것으로, 기획부터 제작까지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위한 일관된 지원사업으로서 의미가 컸다.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로 꼽히는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특별상을 받은 태일이, 무녀도, 코로나19 시국에 개봉했음에도 독립 예술 영화 부문 흥행 1위에 올랐던 기기괴괴 성형수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영진위의 지원사업 덕분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난해 SBA가 애니메이션 지원 예산을 삭감하면서부터 창작 생태계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와 불안감이 감돌았다. SBA는 올해 애니메이션 지원금을 40억 원에서 12억 5,000만 원으로 줄였다. 단편 애니메이션(10편), 웹 애니메이션(10편), 상업 애니메이션(1편) 제작 지원이 사실상 중단된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대폭 축소됐다. 그런데 마지막 보루라고 여겼던 영진위의 지원사업마저 폐지될 위기에 처하자 애니메이션계의 반발이 극에 달하고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망 선고”격앙
애니메이션의 영역과 위상이 날로 커지고 있음에도 가능성과 확장성을 무시한 채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건 마지막 산소호흡기를 떼고 장편 애니메이션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거대한 자본과 축적된 노하우를 자랑하는 미국,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우리나라 장편 애니메이션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고 개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미국과 일본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며 창작 애니메이션의 중요성을 깨달아 여기까지 왔다”며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는데 어떠한 논의도 거치지 않고 폐지한다는 소식에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애니메이션계는“영진위의 지원사업 폐지는 애니메이션 창작의 씨를 말리는 졸속 결정”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문체부, 기재부, 영진위를 향해 폐지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감독들은 공동 성명서를 내고 “창작과 다양성이란 가치가 보존돼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며“지원사업 폐지에 단호히 맞설 것”을 다짐했다.
애니메이션 관련 6개 협회가 참여한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는 일방적인 결정을 철회해 지원사업을 원래대로 복구하고 애니메이션산업 발전을 위한 논의 테이블을 구성할 것을 문체부에 촉구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영진위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영화 전반에 걸쳐 지원사업을 운영해온 전문 기관”이라며 “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은 영진위와 콘진원에서 지원사업 성격에 맞게 이원화해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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